[김문권기자의 벤처열전] 다국적 기업의 벤처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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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말 마카오에서 콘택트렌즈 및 관련용품 회사 바슈롬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회의가 열렸다.
각국 최고경영자(CEO)들이 한데 모여 지난해 사업 결과를 평가하고 올해 사업 계획과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다.
한국에서 회의에 참석한 영한바슈롬 홍명식 사장은 이틀동안 일본 싱가포르 등 각국 CEO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한국 시장에서 급성장하는 이유가 뭐냐,마케팅 노하우를 알려달라 등등.
영한바슈롬은 지난 3년 동안 연 20%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바슈롬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어서 관심이 더 컸다.
그러나 영한바슈롬은 한때 다국적기업의 해외판매 지사 중 하나로 머물 뻔했다.
지난 1997년의 일이다.
바슈롬 본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품질 산소투과성 하드렌즈(RCP렌즈) 공장을 단일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바슈롬은 각국 공장별로 하드렌즈의 제조원가 생산성 등을 조사한 뒤 아일랜드 공장으로 통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영한바슈롬의 충북 음성공장은 문을 닫기로 했다.
홍 사장은 음성공장의 기술력을 내세우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자 바슈롬 본사는 음성공장 폐쇄를 일단 백지화하고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이 때부터 홍 사장은 비상상태에 들어갔다.
공장에서 밤을 새며 품질과 생산성 향상에 매달렸다.
직원들의 손놀림 하나하나를 체크하는 '모션 분석'으로 불필요한 동작을 줄이는 등 뼈를 깎는 노력까지 했다.
"벤처기업이 따로 있습니까.모험과 도전 정신으로 난관을 극복해 가는 기업이 벤처기업이지.직원들의 열정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결과는 엄청났다.
원재료에서 완제품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이 종전의 3분의 1로 단축됐다.
당연히 생산성은 세배로 뛰었다.
불량률은 0.4%에 그쳤다.
불량품 '제로'인 날도 많았다.
하드렌즈 생산의 본 고장인 아일랜드 공장의 불량률은 8%였다.
바슈롬 본사는 당초 결정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일랜드 공장의 하드렌즈 라인을 없애고 음성 공장을 글로벌 생산기지로 정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난관을 돌파한 홍 사장.
그를 벤처기업인으로 부르는 게 지나친 것일까….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