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예보채 借換 할건가 말건가..李在雄 <성균관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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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만큼 정치권의 이해가 엇갈리는 분야도 없다.
직접 돈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불거져 나온 각종 게이트가 거의 모두 정경유착이나 정치권의 다툼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나라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금융제도,특히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출현이 지연됐던 것이나,최초로 예금보험제도를 도입하게 된 배경도 정치적 갈등 때문이었다.
1836년 이후 미국 금융시장은 보안관 없는 서부개척 시대를 방불케 했다.
은행들은 제멋대로 은행권을 발행했고,금융감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예금자들의 돈을 떼어먹고 잠적하는 도둑고양이 같은 은행도 적지 않았다.
금융공황은 주기적으로 발생했고 예금자들의 피해는 극심했다.
금융시장의 무정부상태는 1913년까지 지속됐다.
마침내 미국의회는 중앙은행인 연준리를 설립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설립된 것은 그러고도 20년 후 대공황으로 9천여개의 은행들이 파산한 비극적 사태를 겪은 뒤였다.
그동안 정치적 갈등이 금융시장에 끼친 폐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최근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정치권의 다툼이 또 다시 금융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정부가 작년 11월 국회에 제출한 예금보험공사채권 4조5천억원에 대한 차환발행 보증동의안이 아직도 처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금보험공사는 하는 수 없이 지난 달 말까지 만기가 돌아온 4천7백억원의 예보채를 보유현금으로 상환했다.
그러나 연말까지 4조원이 넘는 채권의 차환발행이 지연될 경우 예보는 자금수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것이다.
당초 예보채는 금융 구조조정에 필요한 공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했으나,단기에 집중된 만기구조를 장기로 분산조정하기 위해서는 차환발행이 필요하다.
어차피 IMF금융위기 이후 투입된 공적자금의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므로 이것을 단기에 전액 상환 또는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예보채 차환발행이 지연돼 상환능력이 의심스러우면 우선 82조원에 달하는 기존 예보채의 유통금리가 오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시장금리도 오르므로 채권거래가 위축되면서 금융불안이 확대될 것이다.
예보채발행의 금리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예보가 보유하는 금융기관의 자산가치가 떨어져 공적자금 회수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또 최근 무디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모처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는 추세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아직도 예보는 공적자금의 회수 등 수입보다 신협 상호저축은행 보험사 등 부실금융기관의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 지급,제일은행에 대한 풋백지급 등 예상되는 지급규모가 훨씬 크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경영이 아직도 불안하고,추가합병 등 금융권의 불안요인이 여전히 남아있어 공적자금 지출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예보의 자금수급 차질은 금융기관 부실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고객의 은행 예금을 지급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그 결과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금융위기가 재발하고 구조조정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
예보는 궁여지책으로 예금보험료의 추가인상을 검토하고 공적자금의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 및 부실책임자들에게 강도 높은 채권보전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으로 당장 예보의 손실을 만회하거나 자금수급의 차질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정부보증을 받은 예보채로 공적자금을 조성해 금융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정부정책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신도 커질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보증동의에 앞서 공적자금에 대한 국정조사와 손실규모의 확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증동의를 처리한 후 국정조사나 손실규모를 확정하는 것은 왜 안되는가.
거의 반년이 다 되도록 마땅히 처리해야 할 국정을 뚜렷한 이유 없이 미루기만 하는 국회는 도대체 무엇하는 곳인가.
정치권은 과연 예보채의 차환발행을 할건가, 말건가.
clee@yurim.s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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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