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시즘(별다른 근거없이 상대방을 공산주의로 몰아 탄압하는 것) 바람이 한참 불던 1950년대의 할리우드. 촉망받는 시나리오 작가 피터 애플턴(짐 캐리)은 첫 작품의 성공으로 세상이 온통 분홍빛으로 보인다. 하지만 매카시즘은 하루아침에 그의 행복감을 송두리째 빼앗고 만다. 공산주의자로 몰려 영화사와 맺었던 계약이 파기되고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 것. 상심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던 피터는 다리위에서 뜻밖의 사고를 당해 물에 휩쓸려 간다. 사고의 충격으로 기억을 상실한 채 어느 낯선 해변에 쓰러져 있는 피터를 한 노인이 발견해 로슨이라는 작은 마을로 데려간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고 크게 놀란다. 2차세계대전때 해외에 파병됐다 실종된, 마을 노인 해리의 실종된 아들 루크와 빼닮았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그를 루크로 대하고, 피터도 자신이 정말 루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해리가 운영하던 영화관 '마제스틱'의 재건에 나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짐 캐리의 연기변신이다. '고무 같은 얼굴 근육을 가진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가 만화적 표정 대신 진지한 얼굴로 관객들 앞에 나선다. 슬랩스틱 코믹 연기에서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던 만큼 '과거의 잔상'이 자꾸 눈앞에 어른대지만 그는 새롭게 인생을 깨달아가는 평범한 시나리오 작가의 모습을 무리 없이 살려냈다. 감독은 '쇼생크 탈출'의 프랭크 다라본트가 맡았다.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이라는 암울한 공간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던 다라본트는 이번에도 휴머니즘을 영화 전면에 내세운다. 적당히 속물적이고 현실타협적인 피터가 결국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는 마무리가 다소 진부하지만 그런대로 무난한 감동을 이끌어 낸다. 폭력과 욕설, 엽기가 난무하는 요즘 영화판에서 모처럼 정통 영화문법을 따라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 오히려 돋보인다. 26일 개봉. 12세 이상. 이정환 기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