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이 영화로 돌아왔다. 지난 61년 스탠 리의 만화 캐릭터로 첫 선보인 이래 40여년만에 동명의 영화(샘 레이미 감독)로 만들어진 것이다. 관련 만화책들은 그동안 75개국 25개 언어로 소개돼 20억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스파이더맨은 거미의 강점을 인간에 접목시킨 캐릭터다. 지극히 가늘지만 강철처럼 질긴 거미줄을 이용한 번지점프, 포획용 그물치기, 유사비행(연의 비행원리와 같은 비행법), 중력에 구애받지 않는 공간이동 등 거미의 행위를 인간이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초인이란 점에서 슈퍼맨과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슈퍼맨처럼 외계인이 아니라 유전공학으로 우연히 탄생한 인간이다. 역삼각형의 어깨를 지닌 슈퍼맨과 달리 근육질 영웅이 아니며, 열심히 공부하는 보통사람이다. 모범생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어느날 유전자조작으로 탄생한 슈퍼거미에 물린다. 이후 피터의 팔뚝에선 거미줄이 튀어 나온다. 수직벽을 기어 오르는 괴력과 위험을 감지하는 초감각도 지니게 된다. 비슷한 시각, 피터의 친구 해리의 아버지 노만 오스본(윌렘 데포)은 잠재능력 개발 실험에서 실패해 악의 화신인 그린 고블린으로 변한다. 스파이더맨과 그린 고블린은 피할 수 없는 대결을 갖는다. 이들이 발레처럼 유연한 동작으로 도심의 빌딩숲을 자유자재로 날며 싸우는 장면들이 압권이다. 영화는 소년에서 남자로 자라는 피터의 성장드라마를 축으로 상실과 희생을 통해 책임감 있는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피터는 초능력을 얻은 뒤 처음에는 돈벌기 위해 레슬링시합에 나선다. 하지만 삼촌의 죽음을 계기로 그 힘을 정의를 위해 쓰기로 결심한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삼촌의 유훈에 힘입은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할리우드의 서부극과 형사물 등에 등장하는 영웅의 전형이다. 세상사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인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지만 걸출한 능력으로 악을 물리치고 초연히 떠나는 인물이다. 그의 초능력은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이다. 평범한 인간과 슈퍼영웅으로서의 이중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사랑하는 연인에게조차 신분을 숨긴다. 사회정의 실현이 우선이며 개인의 사랑은 뒷전이라는 믿음에서다. 악당 오스본은 권력지향주의자로 그려져 있다. 다수 대중이 소수 엘리트를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천재는 대우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사실 이런 엘리트주의는 '팍스아메리카나'를 지향하는 미국인의 정서를 대변한다. 더욱이 뉴욕에서 회사를 창업한 오스본은 자본주의에서 성공인의 표본이다. 반면 피터는 그저 '가난한' 프리랜서 사진작가일 뿐이다. 그러나 오스본을 악인으로 규정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탐욕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또 친구의 아버지가 주적으로 설정된 대목은 복합적인 현대사회의 양상을 반영한다. 명백한 선악은 가리기 힘들며 때로는 선악이 한몸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피터가 사랑하는 메리 제인(크리스틴 던스트)은 역경속에서도 꿋꿋이 버텨가는 강인한 여성이다. 그녀는 피터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배우의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5월3일 전세계 동시 개봉. 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