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강세가 이뤄지며 달러/원 환율이 4개월만에 1,3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20일 장중 1,292.50원까지 떨어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떠밀렸고 올들어 처음으로 1,200원대 진입했다. 이달중 1,300원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하락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장중 1,296.30원까지 급락, 지난 12일 1,332원에 마감해 연중 최고치까지 다다른 이후 9거래일동안 30원 이상을 덜어냈다. 전날 일시적인 조정장세를 보이며 여드레만에 0.70원의 상승을 기록했던 환율은 이날 다시 하락 가도에 가속도를 붙였다. 단기 급락에 대한 경계감이 작용하는 과정에서도 환율은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레벨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기세를 강화하고 있다. '다소 급하다'는 인식과 동시에 '대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국내 시장 자체는 손절매도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역외에서도 달러/엔과 관련 달러매수초과(롱)포지션을 손절매하는 흐름이라 원화 절하요인은 쉽게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하락 추세 인정 = 시장 관계자들은 환율이 이미 '하락 추세'로 접어들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변수들간의 조합에서 이미 원화 강세를 유도하는 힘이 강해졌다는 것. 올 들어 경제 펀더멘털의 개선이 뚜렷했음에도 이를 반영하는 데 다소 인색했다. 수급상으로나 대외 여건상 환율 상승을 이끌만한 요인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3월 중순 이후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순매도가 계속돼 달러수요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했다. 또 3월말 회계연도 결산을 마친 일본 기관투자가들의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달러/엔 환율의 상승 전망이 가세, 달러/원은 하락쪽으로 쉽게 눈길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12일을 꼭지점으로 수급, 대외여건의 변화 등 각종 변수의 변화가 꿈틀거렸다. 외국인이 주식순매도를 중단한 데다 달러/엔 환율의 강력한 지지선이었던 130엔대를 위협하는 하락세를 보이면서 시장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제나 저제나' 환율 하락이 이뤄질 수 있는 시점 파악에 골몰하던 시장 참가자들은 '이때다'며 환율 하락에 적극 가담한 것. 지난달 28일 무디스가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등급'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원화 강세가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가속도를 붙였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달러/엔과 외국인 주식매매동향이 국내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며 "수출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네고물량 유입이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과 세박자가 어우러져 하락 추세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1,300원대가 붕괴된 것은 은행권의 달러매수초과(롱)포지션의 급격한 처분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역외세력도 달러/엔의 하락에 보조를 맞춰 롱포지션을 정리, 역내외 할 것 없이 손절매도에 초점을 맞춘 거래가 횡행한 셈. 또 달러/엔이 129엔대로 내려섰으며 엔/원 환율도 100엔당 1,000원 이상에서 움직이고 있어 수출에 대한 부담감도 크게 짊어지지 않고 있다. 아울러 물가상승 우려감이 꿈틀대는 시점에서 금리인상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 정부가 외환정책상 원화가치 상승을 용인할 것이란 인식도 함께 했다. ◆ 추가 하락과 반등논리 엇갈려 = 이같은 환율 하락 추세의 초입에서 얼마나 낙폭을 키울 수 있느냐가 시장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조만간 1,280원대로의 진입을 예상하는 반면 다른 편에서는 '시기상조론'을 내세워 1,300원대로의 복귀를 진단하고 있다. 월말 네고물량의 공급이 점차 강해질 것으로 예상됨과 동시에 미국 경제회복의 속도에 대한 우려감이 달러화를 약세로 몰고 가고 있다는 점이 1,280원대를 시각에 두는 가장 큰 요인이다. 업체들도 수출회복 기미에 따른 네고물량의 공급이 활발한 가운데 거주자 외화예금을 서서히 풀고 있는 흐름이다. 15일 현재 전달보다 4억3,000만달러 감소한 106억5,000만달러를 기록, 지난해 말 122억9,000만달러에서 4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하락 추세가 맞긴 했지만 1,300원에서 걸릴 것으로 예상됐었다"며 "그러나 이미 뚫린 이상 차트나 분위기상 다음 타겟은 1,280원대로 조정됐으며 월말 물량 공급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국인이 계속 주식을 팔고 수요가 유입되면 반등이 가능하겠지만 1,270원대까지는 하락 트렌드가 가능하다"며 "달러/엔도 기본적으로 128∼132엔의 레인지로 보여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미국 경제회복의 속도에 대한 우려감이 달러화 약세를 야기하는 측면에서도 같은 선상에 놓여진다. 앨런 그린스팬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당분간 금리인상이 없을 것임을 시사했으며 최근 미국 경제지표도 이같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 달러/엔 급락 가능성壺? 수급 점검 필요 = 그러나 최근 달러/엔 하락은 미국 경제의 흐름에 기반했을 뿐, 일본 경제상황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125엔 아래로 급격하게 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본 정부도 최근 애매모모한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일본 경제의 회복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면 엔 강세를 불편해하고 있으며 추가 하락시 일본은행(BOJ)의 개입 가능성도 짙어진다. 한화경제연구소의 강명훈 책임연구위원은 "그동안 펀더멘털 개선에도 불구하고 환율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개선요인을 고려해 하락하는 것은 맞으나 향후 경제지표가 크게 좋아질 것이 없어 일방적으로 한 방향으로 가기엔 다소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달러/엔이나 외국인 주식매매 패턴 등을 재점검하면서 조정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 곧 될 것"이라며 "1,280원대 진입은 4월에는 다소 힘들고 5월에도 달러/엔이 급락하지 않으면 일시적인 등락과정에서 1,280원대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LG경제연구원의 이창선 부연구위원은 "일본 경제로 보아 엔 강세에 한계가 있어 120엔대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고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추가로 공급되기에도 다소 어려울 것"이라며 "크게 봐 하락 추세가 시작됐으나 본격적인 하락세는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일단 거시경제정책의 조합을 놓고 신중한 입장이다. 단기 급락에 따른 시장 불안정성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다음달 금리인하 여부와 수출회복의 불확실성, 물가불안 등을 함께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달러/엔의 하락과 보조를 맞춘다면 최근의 단기 급락이 수출 회복전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인식 하에 물가불안을 조금씩 잠재우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월말을 앞두고 네고물량도 나오고 있어 수급상 공급우위가 예상된다"며 "이번 랠리는 1,290원대 초반까지 충분히 하락할 여지가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주 월요일까지 랠리포인트가 이어지면서 이후에는 외국인 주식매매동향에 신경쓸 필요가 있다"며 "지난 23일 이후 외국인이 주식순매도로 돌아선 뒤 오늘 1,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매도우위를 보여 다음주 초부터 수급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