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요즘...] 옛 기획원출신 '잘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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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 추진되던 지난 75년 경제기획원(EPB) 종합기획과.젊고 잘나가던 진념 과장 바로 옆에 강봉균 주무계장이 특유의 기획력으로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계획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업무에 몰두해있는 사람은 강 계장의 "조수"였던 이기호 사무관. 그때 진 과장은 읽고 있던 경제관련 책 한권을 갓 배치된 수습사무관에게 던졌다.
"내일까지 다 읽고 내용을 요약해서 제출하라".막내인 이근경 사무관(현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게 준 과제였다.
그러고 사반세기가 지났다.
진 과장부터 이기호 사무관까지 모두 장관을 몇차례씩 했다.
권부의 핵심인 청와대 경제수석도 이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했고 경제부처의 수장인 재정경제부 장관도 돌아가면서 했다.
여기에 같은 기획원 출신인 전윤철 경제부총리가 새 경제팀장이 됐다.
바야흐로 EPB 독주시대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관복을 벗은 진 전 부총리에 이어 전 부총리가 경제팀장 바통을 이어받았고,이기호 전 경제수석은 물러난 지 오래지 않아 경제특보로 다시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밖에도 EPB 출신으로 '잘 나가는' 관료들이 수두룩하다.
장승우 기획예산처 장관이 금통위원에서 차출됐고 장 장관이 비운 금통위원 자리는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차관이 물려받았다.
김호식 국무조정실장,권오규 재경부 차관보 등 주요 부처의 요직에도 EPB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반면 EPB와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모피아(재무부의 영문명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들은 상대적으로 기세가 꺾인 모습이다.
김대중 정부 들어 초대 이규성,2대 이헌재 등 두 명이 재경부 장관을 지낸 것을 끝으로 99년 강봉균 장관 이후 재경부 장관 자리는 옛 EPB,차관은 재무부 출신의 구도가 굳혀져가고 있다.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로 영입된 진 전 부총리에 맞서 경선주자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임창열 전 경제부총리(재무부 출신)의 위상이 양측의 기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재경부의 수적 구성은 옛 재무부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구 EPB 출신들은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 분산된 반면 '모피아'들은 재경부내 세제실 금융정책국 등 핵심 부처를 지키고 있는 것.
전 부총리는 혹시라도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모피아'들의 '상실감'을 헤아린 것일까.
지난주 취임 직후 간부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내 성격이 스트레이트(직선적)이긴 하지만 원칙대로 직무에 충실하는 직원들은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다독였다.
그는 "알고 보면 나도 부드러운 남자"라며 간부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3대째 연속 EPB 출신으로 재경부 수장 자리에 앉은 전 부총리가 어떤 팀워크를 이뤄갈지 주목된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