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연설이나 일상적인 대화에서 '공론'이라는 말을 유난히 즐겨 사용한다. 그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세 아들 문제를 비롯해 경기지사 후보경선 문제에 이르기까지 현안마다 `국민적 공론' `사회적 공론' `당내 공론' `경기도지부 공론'등을 강조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공론에 대해 노 후보는 "여론은 때때로 일관성이 없고, 붕 떴다가 가라앉는 거품이 있는데 공론은 오랜 시간 논쟁을 거치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된그 사회의 보편적 인식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또 "선거나 투표보다 공론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즉 시시각각 변하는 여론과는 달리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논의.논란끝에 모아진 `상식적인 합의선'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 후보를 오랫동안 도와온 이기명(李基明) 후원회장은 "형식적 절차도 중요하지만 사회구성원의 합의와 건전한 상식을 우선시하는 태도"라고 부연했다. 노 후보가 이인제(李仁濟) 의원의 경선후보 사퇴로 자신의 대선후보 선출이 사실상 확정되자 굳이 부산, 경기, 서울 경선을 치를 필요가 있겠느냐는 입장을 내비친 것도 선거와 투표 등의 형식적 절차보다 한 사회 구성원간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합의상태인 `공론'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비판론에 대해 노 후보는 "공론도 민주주의"라며 "사실에 근거해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노 후보는 이러한 공론 철학을 바탕으로 각종 연설과 강연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로운 사회' `합리적인 사회'라고 반복해 강조해 왔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절차와 수단으로 투명, 개방, 공정, 자율의 4대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노 후보가 자신의 `정계개편론'에 대해 "은밀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야당에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국민의 동의하에 하겠다"고 강조한 점도 정계개편을 공론화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노 후보의 용어에선 또 `원칙과 신뢰', `대화와 타협', `통합과 조정' 등도 자주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대우자동차 파업현장에 가서 해외매각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다가 계란세례를 받은 일을 `원칙있는 통합과 조정'의 사례로 자주 인용한다. 이같은 `공론 철학'은 사회.경제측면에서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사회연대' 개념에 대한 노 후보의 호감으로 나타난다. 노 후보는 철저한 시장경제체제의 가동을 주장하면서도 `시장의 만능'을 믿지 않고 시장의 실패로 인한 낙오자를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난 경선 과정에서 노 후보의 이념논란을 부른 분배 강조, 재벌규제 완화반대, 철도 등 기간망 공기업의 민영화 재검토, 사회안전망 확충, 주5일제 근무 찬성, 언론사 소유지분 제한 등의 주장도 이러한 이념철학에 따른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