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대치동 지점의 시우동 차장. 그는 요즘 일과 후에 부동산 공인중개사 시험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은행을 그만둔 뒤를 대비하자는 의도에서가 아니다. 현재의 업무에 필요해서다. 그의 정확한 직책은 하나은행 대치동 지점 PB(Private Banker). 수신액 기준 1억원 이상의 거액 고객을 대상으로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게 그의 역할이다. 시 차장이 관리하는 고객만 2백50여명에, 예금액은 1천5백억원이 훨씬 넘는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의 특징은 경제흐름을 잘 알고 있다는 점. 웬만해선 이들을 대상으로 자산관리 자문을 해주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시 차장이 새로 시작한 것이 공인중개사 시험 공부다. 그 스스로가 부동산 거래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어야만 맡은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요즘 은행가에선 시 차장과 같은 PB가 소위 '뜨는 보직'이 되고 있다. 은행들이 수익성을 우선시하면서 고객차별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전에는 은행이 고객을 차별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그만큼 달라진 것이다. 국내에 PB 개념을 처음 소개한 것은 역시 씨티, HSBC 등 외국계 은행들이다. 하나 한미 신한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최근엔 '서민은행'으로 통했던 국민은행은 물론 기업금융 비중이 높은 한빛 조흥 외환 기업은행 등도 경쟁적으로 PB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조흥은행은 아예 PB 사업을 전담할 자회사를 신설할 계획이다. 각 은행들이 PB 사업에 뛰어들면서 서비스 수준도 갈수록 '업 그레이드'되는 추세다. 모든 은행의 PB센터는 고급 사교클럽을 연상시킬 정도의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각종 수수료가 면제되는 등 최상급의 서비스가 제공되는건 물론이다. 씨티은행과 HSBC는 거액고객이 은행을 오갈 때 외제 리무진차를 제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외환은행 PB전문 점포인 분당 서현역지점은 은행 영업시간이 끝난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VIP 고객을 대상으로 유학 이민 및 재테크 상담을 실시하는 야간영업을 하기도 한다. 각광받는 직책인 만큼 PB가 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돈 흐름을 따라잡을줄 아는 안목은 물론이고 돈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교양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은행들은 몇단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이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만 PB로 발령낸다. PB가 되고 나서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한빛은행 서초 PB센터 김우신 차장은 업무를 시작한지 이제 4개월여. 시작 단계이다보니 앉아서 찾아오는 고객만 상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인근 50평 이상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 △인근 회사 임원 △빌딩 등 건물주를 공략 대상으로 정해 틈만 나면 신규고객 발굴에 나선다. "하루 중 6시간은 기존 고객과 상담하고 3시간은 신규고객 발굴에, 2시간은 상담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데 사용한다"는게 김 차장의 설명이다. 꼬박 11시간을 투입하는 셈이다. 이처럼 되기도, 되고 나서도 수월치 않은 보직이지만 수익성이 은행들의 화두가 되는 한 PB는 당분간 가장 각광받는 보직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