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치아는 오복(五福)중 하나로 친다. 이가 나쁘면 몸을 해치기 십상이다. 인생이 고해(苦海)임을 절감하도록 아픔을 주는 것이 치통이다. 오죽하면 '앓던 이 빠지듯 시원하다'는 말이 있을까.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건실하냐 부실하냐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같은 업종에 있어서도 경영 실적이 하늘과 땅인 경우가 있다. 반도체업계에 한국의 자랑과 치부가 어울려 있다. 삼성전자는 매출이 메모리 반도체 세계 시장점유율 1위,시가총액이 세계 굴지의 기업인 일본 소니사를 앞지르고 국내 코스닥 시장 전체의 그것을 초과,거래소 시장의 20% 수준을 차지하는 세계적 우량기업이다. 반면 하이닉스는 국민 경제 전체의 국제 신인도를 끌어내리는 대표적 부실기업이다. 바로 그 하이닉스의 해외 매각 문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부실기업을 정리하는데 매각,독자 생존,법정관리 또는 청산 등 크게 세가지 방안이 있다. 우선 시장원리대로 법정관리 또는 청산 방안을 생각해 보자.법정관리의 경우 하이닉스 및 관계회사 여신 추가 충당금 적립 때문에 채권 금융기관 부담이 3조7천억원 정도에 이른다. 청산의 경우 청산 가치는 3조6천억원(지난 3월기준)으로 추산된다. 시간을 끌수록 손실은 늘어나고 청산 가치는 줄어들 것이다. 어려운 문제는 종업원의 실직이다. 하이닉스는 물론 2천여개의 협력업체들이 연쇄 도산해 대규모 실업(약 13만명) 발생이 예상된다. 이를 감내할 만큼 든든한 사회안전망이 없고 노조도 문제다. 원칙은 옳은데 정부는 후유증을 겁낸다. 둘째로 독자 생존의 길을 선택했다 치자.문제의 핵심은 D램가격인데 지난해 최악을 벗어나 올해 3월까지 반등했으나 4월부터 다시 꺾이고 있다. 5년 뒤가 아니라 당장 내년에 뭘 먹고살지를 고민하라는 김광호씨(삼성전자 부회장 역임)의 말처럼 R&D투자가 지속돼야 할 메모리 산업에 이미 하이닉스가 낙후돼 있다. 2005년까지 8조6천억원 시설투자 소요액과 약 2조원의 부채탕감조치가 채권단의 부담으로 예상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마지막 선택이 매각 방안이다.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이 삼성전자(27%) 마이크론(19%)에 이어 3위인 하이닉스(14.5%)를 눈독들인 독일기업(인피니온),중국기업들이 찾아왔다 자금력 부족으로 물러나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독과점 문제,빅딜 후유증 등으로 입질을 하지 않는다. 결국 시장 점유율 세계 1위 쟁취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마이크론사가 원매자로 등장했다. 마이크론의 속셈으로는 반도체처럼 경기부침이 심한 업종에서는 시장 1위를 차지해야 가격 변동의 진폭을 이기고 살아남는다는 전략일 게다. 국외자의 입장에서 매각 협상의 구체 사항까지 파악할 수 없으나 골자는 대략 이러하다. 매각대금으로 채권단이 마이크론의 주식으로 1억8백60만주와 현금으로 2억달러(매각 협상에서 제외된 하이닉스 미국 현지법인 Engene공장 투자,15% 지분 확보용)를 받는다. 문제는 마이크론 주가가 증시상황에 대하여 변동하기 마련이고 시설자금 및 운영자금용으로 15억달러의 금융지원을 조건으로 달고 있다. 금융지원에 대해 변동금리 상한이 있고 마이크론 본사 보증이 없다. 개운치 않은 조건이다. 거래에는 상대가 있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읽고 협상한다. 하이닉스 및 채권단의 수는 마이크론에 노출돼 있었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하이닉스에 불리하다. 영업손실과 부채는 날로 늘어나고 시설의 청산가치는 날로 떨어진다. 아무도 미래는 점칠 수 없다. 반도체가격의 기적 같은 반등과 독자생존 가능성에 국민경제를 도박할 수 없다. 그 실낱같은 가능성보다 개연성이 높은 것은 대우자동차 매각의 재판이다. 처음 원매자(포드)의 입질이 있을 때 헐값 타령하다 결국 더 헐값으로 GM에 팔지 않는가. 이제 매듭지을 때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 경제의 마지막 현안 하나를 풀고 가자.산에 불이 나면 우선 끄고 봐야 한다. 무엇이 최선의 수단인가를 따지느라 시간을 허송할 수 없다. pjkim@ccs.sogang.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