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경제 계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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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석에서 만난 하이닉스반도체 채권은행의 핵심관계자는 "개인적으로는 독자생존시키는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매각에 반대하면 목이 잘릴 듯한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그는 "하이닉스를 매각해 불확실성이 완전히 제거된다면 모르겠지만 15억달러를 신규로 대출하기 때문에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 느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소집한 모임에 참석했던 한 투신사 사장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했다"며 더이상 말을 삼갔다.
그런가하면 하이닉스 관계자는 "독자생존방안은 진술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채권금융회사들 사이엔 마치 경제 계엄령이라도 내린 듯 삼엄한 분위기가 감돈다.
정부가 하이닉스를 처리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과 방법은 이미 관치의 수준을 넘어섰다.
현재 가격이 26달러짜리인 마이크론주식을 매각대금을 계산할 땐 35달러로 부풀렸다.
매각후 남게 되는 잔존법인의 사업전망은 장밋빛으로 분식(粉飾)했다.
이렇게 만든 보고서에는 채권단의 이름을 차명(借名)했다.
이미 주요 은행장중 한 명은 매각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로 경질을 당했다.
그의 역할은 금융현업 경험이 많지 않은 다른 은행장이 대신하고 있다.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대외신인도를 높여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법인도 법률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서 법인격(法人格)을 갖고 있다.
죄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릴때 신중을 기하듯 부실기업 퇴출에도 정당한 절차가 필요하다.
더욱이 1만3천명의 근로자와 2천5백개의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관료들은 은행실무자들의 의견도 묵살한채 일방적으로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려 하고 있다.
과거 유신정권은 국가안정을 명분삼아 사건을 조작하고 허위자백을 강요한 끝에 반정부세력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현 정권은 경제안정을 내걸고 사실을 "조작"하면서까지 하이닉스매각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신정권이 민주주의를 10년이상 후퇴시켰듯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시장경제의 발전을 그만큼 늦추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