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홍콩에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영화 얘기가 자연스레 화두로 떠오른다.


중화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한류(韓國潮流)열풍을 등에 업고 홍콩에서 개봉된 한국영화들이 대박 행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개봉된 '엽기적인 그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데 이어 최근엔 '조폭 마누라'가 홍콩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이 두 영화를 본 홍콩 젊은이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조폭 마누라'를 보면서 문화적인 차이를 많이 느꼈다고 했다.


한 젊은이는 "한국에서는 여성들의 파워가 센 것을 이상하게 보나봐요.


홍콩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데… 영화에서처럼 남편이 기도 못펴게 하는 '조폭 마누라'들이 얼마나 많은데요"라고 말했다.


사실 홍콩의 여권(女權)은 한국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


기혼 여성의 70% 이상이 직업을 갖고 있으며,직장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50%에 달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고위직으로 올라가도 이 비율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만큼 여성의 '목소리'가 남성들과 공평하다.


홍콩 여성들이 이처럼 활발히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상황적인 여건이 뒷받침되고 있다.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할 때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이 육아문제다.


홍콩에선 돈을 벌기 위해 날아온 20여만명의 필리핀 가정부 덕분에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공평한 가사 분담 또한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돕고 있다.


부인이 출장을 가면 아이들을 챙기고 가사를 담당하는 것은 당연히 남편 몫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을 바라보는 '홍콩 사회의 눈'이다.


홍콩 사회는 여성들의 능력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발휘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준다.


여자 의사 밑에서 간호사로 있는 한 홍콩 남성은 "합리적이고 능력있는 상사면 됐지 그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라며 질문을 던진 기자를 되레 쑥스럽게 했다.


언제쯤이면 한국에서도 '잘나가는 여성'을 화제성 기사로 다룰 필요가 없는 날이 올까.


홍콩=김미리 산업부 벤처중기팀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