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주요 노사갈등 현장에서 항상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인권변호사 시절엔 대우조선 쟁의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다. 초선의원 때는 국회 노동위원으로 쟁의현장을 수없이 방문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도 현대자동차 파업을 중재했다. "갈등의 현장이 바로 정치의 현장이 돼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하지만 노 후보의 '노사관'은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크게 바뀌었다. 그는 초창기에는 노동계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해왔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이후에는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고 있다. 정리해고제처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에도 찬성해 노동계로부터 비판을 받을 정도로 의미있는 변화를 보였다. ◆노동정책=노 후보는 "변호사보다 국회의원이 억압받는 노동자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어 정치를 시작했다"고 정계입문 배경을 설명한 적이 있다. 그만큼 노동자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초선 의원때는 이해찬 이상수 당시 평민당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불리며 국회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했고,여러 파업현장을 방문해 타협을 이뤄냈다. 이 때문에 경선과정에서 이인제 후보로부터 "노동자들의 불법파업을 선동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엔 노동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정리해고와 같은 핵심 현안에 대해 노동계와 다른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노 후보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지 않으면 오히려 실업률이 증가할 수도 있다"며 정리해고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8년 현대자동차 파업때도 노조측이 정리해고를 수용하도록 설득했다. 이때 정리해고됐던 이들이 2000년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던 부산 선거사무소에 찾아와 시위를 벌였다. 노 후보는 이에 대해 "당시 중재가 실패로 끝나 국가경제가 떠 안았어야 할 손실에 비한다면 작은 소란"이라고 말한다. 작년에는 대우자동차 분규현장에서도 해외매각을 위해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라고 주문했다가 달걀세례를 받기도 했다. 노 후보는 지난 1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조의 일부 지도부가 과거 논리에 얽매여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중심의 노사문제 해결=노 후보는 "노사문제에 개입해서 도움이 되면 누구라도 개입해야 한다"는 소신을 보이고 있다. 87년 대우조선 분규당시 노동자 이석규씨가 가슴에 최루탄을 맞고 숨졌을 때 노 후보는 거제도로 달려가 이상수 변호사와 함께 보상금 합의 등 사태수습을 도왔다. 결국 제3자 개입과 장례식 방해혐의로 구속돼 변호사 업무가 정지됐다. 그런 반면 지난 99년에는 삼성자동차 매각협상을 도와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노 후보는 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대화로 모든 것을 풀어나가는 노사관계가 가장 바람직하다"면서 "이를 위해선 투명성과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노 후보는 특히 "노사간 신뢰는 정보를 공유하고 주요 의사결정과정에서 합의 또는 협의를 해야 생긴다"면서 우리사주조합에 1명의 사외이사 선임권을 주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윤기동 기자 yoonk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