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사가 이달초 개봉한 "스파이더맨". 이 영화에 나오는 뉴욕 맨해튼 타임 스퀘어장면에서 건물 벽면에 걸려있는 삼성전자의 입간판이 한때 실종될 뻔했다. 당초 영화에는 삼성전자의 입간판 자리에 "USA TODAY"간판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컬럼비아의 대주주는 일본 소니다. 소니는 경쟁업체 광고를 해 줄 이유가 없다고 보고 그래픽 처리를 통해 삼성전자를 지워버린 것. 건물주의 항의로 간판은 원래대로 복원됐지만 이 사건은 소니가 삼성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내줬다. 외국 애널리스트들의 진단을 보면 소니의 이같은 행위가 결코 '오버'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 워버그증권의 유명한 애널리스트인 조너선 듀톤은 "삼성전자를 다른 회사 기술을 모방하는 기업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 시로 미코시바씨는 한발 더 나아가 "삼성전자는 비용을 정말 효율적으로 쓸 줄 아는 업체이며 샤프나 히타치보다 제조기술이 뛰어나다.일본 업체들은 이미 2년 전에 삼성전자와 경쟁을 중단했다"고 지적했다. 외국 애널리스트나 이코노미스트들의 삼성전자에 대한 평가는 몇 년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값싼 가전제품이나 D램 정도를 만드는 회사로 치부됐다. 그러나 IMF 와중에도 흑자를 내고 핸드폰 디지털가전 등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있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 스프린트사의 존 가르시아 부사장은 "삼성전자는 디자인과 기능의 우월성으로 무선사업에서 성공했다.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값싼 전자레인지 정도나 만드는 회사로 생각했고 또 실제로 그랬다"고 말했다. 외국인은 삼성의 강점을 특유의 치밀함과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에서 찾는다. 프랑스 세릭 코레사의 필립 드 샤보 라투르 사장은 "삼성은 최고의 경영진을 끌어들이는 능력도 대단하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치밀히 전략을 짠다는 점에서 여느 기업과 다르다"고 진단했다. 워버그증권의 리처드 사무엘슨 서울 지사장은 "이건희 회장은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뒤로 물러나 경영을 전문가들에게 맡긴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회장의 카리스마와 경영진의 전문성이 합쳐져 상승효과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기업이 강해지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한 우려도 있다. 워버그의 듀톤 애널리스트는 "삼성이 더 성장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오만"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삼성은 오만 때문에 뼈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지난 95년 스티븐 스필버그와 영화사업 합작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스필버그는 협상결렬 후 "삼성 사람들은 영화가 아닌 반도체 얘기만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심사는 후계체제 문제다. 제프리 존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이재용씨는 유능한 경영자가 될 것이란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회장의 아들이기 이전에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조주현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