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3:44
수정2006.04.02 13:45
법정 스님은 일찍이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정체는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라고 설파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을 지니고 살게 마련이다.
그것이 자기 나름대로 이해는 했지만 결국은 오해로 귀결되게 만든다.
전·현직 대통령들의 일을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다.
민주화 투쟁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두 김씨가 대통령직에 오른 뒤 실망하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두 사람 다 정권 출범초기에는 지지자들마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는 TV에 대통령 얼굴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릴 정도다.
'사랑'이 '오해'였음을 깨닫는 순간의 반작용은 이처럼 무섭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를 다시 도입한 이후 선출된 대통령의 지지계층이 번번이 피해를 보는 아이러니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지난 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를 밀었던 사람들은 중산층과 고소득 보수세력이었다.
하지만 취임한 지 1년도 못돼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직업군에 대한 소득세가 2배나 올랐다.
그의 당선을 도왔던 중진 정치인들도 개혁의 대상으로 '팽(烹)' 당했다.
지난 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던 김 대통령의 취임 후 이유야 어떻든 계층간 소득격차가 더욱 벌어져 버렸다.
그 뿐인가.
정치지도자의 차원을 넘어 정신적 지도자로서 '선생님'으로 불렸던 그가 아들 비리 문제로 말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조금만 사려 깊은 유권자라면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시장에서 물건을 하나 고르더라도 경제논리로 따져본다.
하지만 대통령을 뽑을 때는 지역주의와 자기중심의 고정관념에 얽매여 맹목적 사랑을 쏟은 감이 없지 않다.
이 모든 게 정치라는 서비스를 공급하는 쪽에서 지역주의를 선동하고 폭로전으로 판세를 바꿔보려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선거판)'을 형성해온데 따른 부작용이다.
투표를 하는 행위도 따져보면 경제행위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양질의 국정운영 서비스를 제공할 사람을 선택하는 사회적 계약의 이행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정치도 소비자 중심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유권자부터 바뀌어야 한다. 후보자를 평가하는 안목을 높이는 노력도 절실하다.
선거판에도 조직과 이익단체를 동원해 어쩔 수 없이 표를 찍게 되는 '다단계판매식 선거',돈이나 이권과 표를 맞바꾸는 불공정 선거,지역주의와 폭로전으로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충동구매유도형 선거' 등 시장의 폐해가 있게 마련이다.
이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게 충동구매식 선거다.
후보의 자질과 비전을 판별할 눈과 의식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옷이야 잘못 사면 반품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치지도자는 웬만해선 반품이 안된다.
어떤 후보가 국민과 나라를 위해 얼마나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쨌든 우리에게 여전히 절실한 과제는 경제문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일자리를 늘리는 일과 IMF 경제위기 이후 심화된 빈부 격차를 줄이는 것이 최대의 숙제다.
이제는 이러한 일을 맡기는데 누가 적합한지 냉철하게 판단해 격조 높은 정치 서비스를 받을 준비를 해야겠다.
거창하게 국가와 민족까진 생각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에게 어느 후보가 도움이 될지 따져볼 일이다.
또다시 '죽도록 오해'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soosu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