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불교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명상·참선에서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보살도의 실천으로 확산되려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대중불교화 단계에 접어든 것이죠.그동안 참선 명상을 통해 지혜 공부를 했다면 이젠 자비의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서울 강남 능인선원 원장 지광 스님(智光·52)이 미국 동부의 명문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초청으로 강연한 뒤 최근 귀국했다. 프린스턴대에서는 종교학과 초청으로,하버드대에서는 하버드불교커뮤니티(HBC) 초청으로 각각 강연했다. 하버드대 강연은 2000년 10월에 이어 두번째다. 두 대학에서의 강연 주제는 '명상,행복에 이르는 길'과 '위대한 영웅,보살이 돼라'. "하버드대학의 경우 처음엔 명상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었으나 그쪽에서 불교의 사회적 기여,화엄사상과 보살도에 대해 강연해 달라고 하더군요. 지난해 9·11테러 이후 미국의 지성들이 자기들의 종교와 문명관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예컨대 미국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이고 기독교정신이 문명과 생활의 바탕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슬람과의 충돌로 많은 희생자를 낸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한 것이죠." 알라와 여호와의 갈등,즉 '신들의 전쟁'이 현실에서의 폭력과 전쟁을 낳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청중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서양 학생들은 평화 공존에 관한 숙제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져 현재 미국 사회의 정신적 공허감과 위기감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너와 나,온 우주가 한몸임을 설파하는 불교의 불이(不二)사상은 세계 평화를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광 스님은 "불교는 종교의 이름으로 싸우지 않으며 기독교도 이슬람도 사랑한다"며 "보살의 사랑은 종교도 초월하는 것"이라고 했다. 온 세상이 하나임을 깨닫고 무한의 사랑과 자비를 실현하는 사람,위대한 신심과 용기를 바탕으로 무량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영웅,즉 보살이 되라는 뜻이다. "미국의 불교 신자나 지성인들의 수준이 매우 높아요. 명상·참선만이 아니라 경전 공부도 대단히 열심입니다. 전통 불교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우리가 부끄러울 정도예요. 명상도 해보고 경전 공부도 해보니 결국 불교는 사회로 나가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이 잡히는 것이지요." 지광 스님은 "미국에는 티베트 일본 베트남 미얀마 등의 불교가 많이 알려져 있는 반면 아직 한국 불교는 그렇지 않다"면서 "젊은 스님들이 보다 많이 나가서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에 한국 불교 진출의 전초기지를 세우기로 하고 이번 방미 기간중 준비상황을 점검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지광 스님은 "미국 서부의 버클리대와 스탠퍼드대 강연도 추진되고 있으며 기회가 닿는 대로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지광 스님은 지난 84년 서초동의 상가 2층에서 시작한 능인선원을 신도 20만명 이상의 대형 포교당으로 성장시켰다. 알기 쉽고 논리적인 설법과 함께 영어에도 능통해 숭산 스님에 이어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릴 적임자로 꼽히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