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鎭弘 < 한국예술종합학교 커뮤니케이션학 교수 > 임직원의 말 한마디 때문에 세계 굴지의 철강회사 포스코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 담당 임원은 보직해임되는데 그쳤지만,깨끗하고 건실했던 포스코의 기업이미지는 일순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포스코라는 기업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 능력상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포스코의 대변인 겸 홍보담당 전무였던 유병창씨는 지난 5일 오후 11시20분쯤 모 신문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재작년 7월 이희호 여사가 유상부 회장에게 홍걸씨를 한번 만나달라고 부탁해 유 회장과 홍걸씨가 만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씨는 5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또 다른 언론사 기자의 확인전화에 "이희호 여사가 만남을 주선한 것이 아니다"면서 "그러나 청와대측이 먼저 요청해서 만난 것은 사실"이라며 일부 사실을 번복했다. 다음날인 6일 오전 11시 서둘러 마련된 공식기자회견에서는 포스코의 조용경 부사장이 직접 나서서 "내가 유 회장과 홍걸씨 일행의 만남을 주선했다"며 이 여사나 청와대의 개입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해명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큰 의혹과 오해를 불러 일으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 기업의 위기는 항공사의 비행기 추락이나,대규모 공장의 화재,금융회사의 금융사고 같은 외형적인 것에서만 유발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위기는 사소한 듯 보이는 작은 사건에서 촉발된다. 그리고 그 사소하고 작은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이 자칫 오랫동안 잘 쌓아온 기업 이미지를 한 순간에 허물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업경영에서는 바로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에 소홀하고 취약하다. 사실 위기관리의 몇가지 원칙과 방법만 숙지하면 무난히 넘길 수 있는 사안을 사소한 말 한마디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문제로 비화시키기 일쑤다. 그래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아니 포클레인을 동원해도 막기 힘든 상황으로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종잡을 수 없는 정치권의 기류 때문에 예기치 않은 불똥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를 상황에서는 더더욱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의 ABC'를 확인해 두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첫째,설사 대변인이라 할지라도 모든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대신해 대답하려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포스코의 전 대변인 유병창씨는 바로 이 점에서 결정적 실수를 한 셈이다. 그는 자신이 한 말들을 뒤집으면서 "유 회장과의 의사 소통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고 말했지만,별로 설득력 없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애초에 굳이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둘째,어차피 공개될 정보라면 주저하지 말고 공개하라는 것이다. 사태 추이를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는 기자들에게 기삿거리를 적시에 공급해 그런대로 궁금증을 풀어주며 시간을 버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초반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기류에 휘말려 더 큰 곤욕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초 미국에서 엔론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을 때 말 실수 많은 부시 대통령을 큰 상처입지 않게 보호해낸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이 잘 쓰던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셋째,'노코멘트'나 '오프 더 레코드'라는 표현은 절대 금물이다. '노코멘트'는 상대방에게 뭔가를 숨긴다는 의심만 불러일으킬 뿐이며, '오프 더 레코드'는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내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번 포스코의 경우를 보면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 능력도 문제이지만,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은 '지뢰밭을 포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언제 어디서 유탄이 날아올지 모를 사격장 옆을 지나는 것과 다를 게 없음을 확인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atombit@netian.com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