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韓國 부활하나] (상) '속도로 승부한다' .. 사양산업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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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 수출의 견인차였던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멍에를 짊어진지 오래다.
지난 89년만 해도 43억달러였던 대미수출 실적이 지난해엔 31억달러까지 줄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보면 한국은 여전히 5대 섬유 수입국중 하나인 '섬유강국'이다.
오는 2005년이면 미국 섬유수입쿼터가 완전철폐되는 등 세계 섬유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사양산업'과 '섬유강국'이란 양극단의 평가가 동시에 존재하는 한국 섬유산업의 현주소와 부활 움직임을 미국에서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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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7번가의 다른 이름은 패션애버뉴.
7번가와 39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 있는 재봉질하는 사람의 동상이 상징하듯 미국 섬유산업의 중심지다.
7백억달러가 넘는 수입물량을 포함,연간 7백70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섬유시장의 심장부인 셈이다.
리바이(Levy)그룹.리즈클레본 에스프리 다나부크만 등 세계적 유명 브랜드를 갖고 있는 이 그룹의 본부가 있는 곳도 바로 7번가 512번지.
겉옷에 관한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이 회사는 지난 97년 8천5백만달러선이던 매출이 최근 2억달러로 늘어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불황으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의류업계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리바이그룹의 구매와 생산관리를 담당하는 사이먼 박(한국명 박석인)부사장의 설명은 간단하다.
"한국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란다.
"섬유는 생선과 같아 상한 것(유행이 지난 것)은 값어치가 없다"는 그는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중 유행이 급변하는 뉴욕에서 원하는 속도의 빠른 생산과 딜리버리가 가능한 곳은 한국뿐"이라고 얘기한다.
한국에서 바이어들이 떠날 무렵인 90년대 중반 리바이는 오히려 한국비즈니스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박 부사장이 97년 혼자 만들었던 한국지사는 지금 직원수가 40여명에 달한다.
납품업체들에 현금결제까지 하는 등 업체들이 품질유지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
그렇게 만든 원단을 인건비가 싸고 재봉기술이 좋은 나라로 가져가 옷을 만들어 팔았다.
50% 미만이던 한국산 원자재비중은 이제 70∼80%에 이를 정도다.
7번가에서 한 블록 떨어진 브로드웨이의 35∼40스트리트도 뉴욕시당국이 지정한 패션센터에 속한다.
이곳 브로드웨이 1359번지에 있는 새한(옛 제일합섬) 미국 지사.리바이 그룹과는 반대로 한국 기업 스스로 품질과 빠른 물류대응이란 강점을 살려 미국시장 공략에 성공한 사례다.
지난 95년까지 새한의 섬유원단 대미수출은 연간 5백만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0년엔 9천6백만달러를 기록했고 올해는 1억달러를 가볍게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7년 만에 수출을 20배이상 늘린 셈이다.
처음에 혼자 파견나와 일하기 시작했던 신만철 지사장은 "장사는 편하지만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에이전트활용방식에서 벗어나 대형 의류회사 등 수요처와 직접 거래하는 전략을 세웠다"며 "처음엔 거래선을 만나기 힘들었지만 이들도 한국 섬유의 품질과 적기 공급능력 등 서비스경쟁력을 알면 값이 좀 비싸더라도 구매를 늘린다"고 말했다.
새한은 본사 원단매출의 5∼6%에 불과하던 미국 수출비중이 최근 45%선으로 급증하자 미주팀을 강화하고 파견인원을 늘리는 등 섬유부문을 다시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다.
신 지사장은 "섬유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지속적인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섬유=사양산업'이란 구도는 더이상 성립될 수 없다"고 자신한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첨단산업의 수출증진에만 관심을 쏟던 KOTRA 뉴욕 무역관도 본격적인 섬유수출지원에 나섰다.
지난달 16,17일 이틀간 패션센터 내의 뉴요커호텔에서 28개 한국 섬유업체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던 '2002년 뉴욕섬유전시 상담회(Korean Preview in NY)'가 그 출발점.
권오남 뉴욕무역관장은 "뉴욕에서 단일 업종의 한국 상품 수출상담회가 열린 것은 처음"이라며 "바이어들의 반응도 좋았던 만큼 여건이 허락되면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 경쟁력을 갖고 있는 섬유에 대한 투자는 곧바로 수출증대로 이어진다는 확신에서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