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향락에 흠뻑 취한 신세대 '고교 얄개들' .. 영화 '일단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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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수년간 한국의 주류 청춘영화들은 우울했거나 비장감이 감돌았다.
80년대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비롯,90년대의 "여고괴담" "짱" "나쁜 영화""비트" 등에서 주인공 고교생들은 학원제도에 억눌려 신음하거나 반대로 감정을 폭발시켰다.
조의석 감독의 데뷔작인 코믹액션 청춘영화 "일단 뛰어"(조의석 감독)는 밝고 명랑하다.
70년대의 청춘물 "고교얄개"시리즈의 정서와 닮아 있다.
다만 신작에선 고교생 주인공들이 교정을 뛰쳐나와 소비문화를 향유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졸부의 아들인 "오렌지족" 성환(송승헌),밤에는 호스트로 일하는 "기생오라비" 우섭(권상우),세상사에 흥미를 잃은 "수수방관형" 진원(김영준) 등 3총사는 한묶음으로 몰려 다닌다.
어느날 이들의 차위에 난데없이 돈벼락이 떨어진다.
도둑이 사채업자집을 턴 뒤 그집 개에게 물려 도망치다가 떨군 것이다.
주인공들은 21억원이나 든 돈배낭을 들고 일단 튄다.
강력계 신참형사 지형(이범수)이 이들의 뒤를 밟으면서 소동이 벌어진다.
삼총사의 대처방식은 청소년들이 21세기초 소비문화의 주류로 급부상중인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고급영화관을 통째로 빌려 호젓하게 영화를 보거나 백화점에서 고급옷을 쇼핑하며 중식당에서 고급요리를 사먹는다.
이들은 이성보다는 소비에 관심이 더 높다.
진원이 인터넷 채팅으로 사귄 여자친구 유진과는 "쿨"한 관계다.
과거의 주인공들처럼 이성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표시하지 않는다.
공부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학내불만이 향락과 소비문화에 용해됨으로써 폭력성도 크게 줄었다.
불만해소의 창구가 없던 90년대 청소년들이 "비트"에서 교사를 구타하거나 "여고괴담"에서 교사를 살해하는 방식으로 폭력성을 드러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신 우섭은 밤이면 "언니"들을 찾아가 50만원씩 화대를 받고 몸을 팔고 성환은 고급승용차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90년대 이전의 청춘영화에서 고교생 주인공들은 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순수의 흔적은 진원에게 약간 남아 있다.
그는 돈배낭을 경찰서에 돌려줄까 몇차례나 고민하지만 실행하지는 못한다.
주인공들은 철저히 자신을 즐기지만 우정도 중시한다.
성인영화에선 주인공들이 돈을 놓고 싸우는 경우가 많으나 여기서는 배신의혹이 있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돈가방을 들고 도둑들을 찾는다.
이 영화는 이처럼 다양한 신세대 문화코드들을 함축하고 있다.
영화 장면들은 곳곳에서 튄다.
한 장면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일쑤다.
26살의 국내 최연소 장편영화 감독의 경험부족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젊은 감독의 발랄한 감각과 패기는 신세대에게 어필할 듯하다.
"일단 튀어"는 임권택 감독의 연륜이 녹아 있는 "취화선"과 함께 오는10일 개봉된다.
국내 최고령 현역감독과 최연소 감독의 흥행대결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