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는 잘 차려 놓은 밥상과 같다." 외국계 증권사 브로커들이 종종 내뱉는 말이다. 외국인들이 보기엔 한국증시가 그만큼 호락호락하고 손쉽게 수익을 챙길 수 있는 만만한 시장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지적은 그동안 시장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1월초 외국인이 3일간 거래소시장에서만 5천4백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하자 종합주가지수는 690선에서 750선까지 단숨에 8%가량 폭등했다. 그로부터 3개월여가 흐른 4월말. 승승장구하던 주가는 838선으로 3일만에 8%이상 곤두박질 쳤다. 6천4백억원에 달하는 외국인 이익실현 매물이 직격탄이었다. 외국인이 국내 증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단적인 사례중 하나다. 국내 증시가 외국인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팔면 떨어지는 '외풍(外風) 장세'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남철 마이애셋자산운용 전무는 "과거엔 주로 외국인의 주식매매가 국내 증시를 요동치게 했지만 요즘에는 리서치분야에까지 외풍이 몰아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10일 'UBS워버그 파문'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이처럼 외풍 장세가 강해지고 있는 가장 큰 배경은 국내주식에 대한 외국인의 보유비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IMF 위기 직전인 지난 97년말 외국인의 보유비중(거래소시장.시가기준)은 13.7%로 국내 기관(26.3%)보다 낮았었다. 그 이후 외국인 비중은 해마다 높아져 작년말 36%를 넘어섰다. 기관과 개인을 제치고 최대 큰손으로 부상한 셈이다. 게다가 삼성전자 국민은행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지수 영향력이 큰 핵심 블루칩의 외국인 비중은 50∼60%에 이르고 있다. 강창희 굿모닝투신 사장은 "메이저 투자자인 외국인의 영향력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면서 "국내 연기금이나 투신사 등이 기관투자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외풍 장세는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대 '큰손'인 외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외국계 증권사의 입김이 강해진 것도 같은 이치다. 외국인이 자금과 정보력에서 한수 위라는 점도 국내증시를 '천수답'으로 만들고 있다. 김석규 B&F투자자문 대표는 "외국인 자금은 연기금 뮤추얼펀드 등 대부분 장기자금인데 반해 국내 기관은 길어야 1년인 단기 자금이 주류"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증시가 오르면 돈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하락하면 썰물처럼 빠져버리기 때문에 국내 기관들이 장기비전과 여유를 갖고 외국인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주식수요 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제도와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송상종 피데스투자자문 대표)는 지적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국내 증시에 만연한 사대주의(事大主義)도 외풍장세를 부추기고 있다. 최남철 마이애셋 전무는 "국내 기관들이 제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없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국내 증권사가 낸 보고서를 중시하는 투자문화가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