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 '징후'와 정책방향 .. 洪起澤 <중앙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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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는 불경기가 아니라 호경기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정부가 호황기에 안일하게 대처하면 경제가 위험해진다는 뜻이다.
1997년 외환위기도 반도체경기가 주도한 94∼95년 호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데서 발생했다.
정부는 반도체경기 쇠퇴에 대비해 조기에 정책기조를 안정화쪽으로 바꿔야 했는데 경기활성화정책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경제에 몇가지 좋지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낙관적으로 예상되던 올해 경기전망이 갑자기 불투명해졌다.
최근까지 1천3백30원대를 유지하던 대미 환율이 며칠새 1천2백70원대로 급격히 하락했다.
미국 경기회복세 지연으로 달러화가 주요 통화에 대해 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우리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가 넘는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올 들어 한때 4달러를 상회하던 1백28메가 SD램 가격이 2달러 언저리로 추락했다.
1,000포인트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던 종합주가지수는 800선으로 급속히 떨어졌다.
이에 따라 재계 일각에서는 지난 7일 단행된 금리인상이 성급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4.0%에서 4.25%로 0.25%포인트 인상한 이유는 예상되는 경기과열과 이에 따른 물가상승압력을 사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4월 수출은 14개월만에 증가세로 돌아서 수출증대가 기대되었다.
그러나 원화평가절상,미국경기 회복세의 지연,반도체가격 하락 등으로 지속적인 수출회복은 다시 불투명해졌다.
한국은행이 불과 며칠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잘못 판단한 것인가.
그 대답은 '아니오'이다.
오히려 한은의 금리인상은 늦은 감이 있다.
올해 경기회복의 견인차는 가계소비와 정부지출이다.
통화당국의 저금리정책 덕분에 올해 들어 지난 4월말까지 가계대출이 24조원이나 증가했는데,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정부는 우리의 가계대출이 현재 GDP대비 64%수준으로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낮은 편으로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지난해 은행 가계대출금 중 절반 가량이 주택구입자금 및 전세자금으로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우리 금융시스템은 아직도 안정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다.
주택금융의 경우 선진국과 같이 30년 이상의 장기할부대출금융이 발달돼 있지 못하다.
현재 2백65조원으로 추정되는 주택금융은 대부분 단기금융이다.
따라서 주택가격이 하락해 담보가치를 위협하면 은행들은 언제든지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
이는 주택가치의 하락을 가속화시켜 경기를 장기침체에 빠뜨린다.
80년대 이후 부동산가격 버블 붕괴로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이 좋은 예다.
이미 수도권에서는 주택가격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 서울 강남지역 소형 아파트 시장에서는 1년5개월만에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단기매매를 노리고 은행 대출을 받아 투자에 나섰던 수요자들이 금리부담을 우려해 급매물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유동성공급으로 유발된 소비수요의 증대는 당장의 경제회복에는 효과적일지 모르나,중장기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킨다.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은 아직 1만달러도 못된다.
선진국과 같이 소비위주의 경제성장을 논할 때가 아니다.
성장잠재력은 인적,물적자원에 대한 투자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기업의 설비투자는 작년 5.1% 감소했으며 올 들어서도 2% 증가에 그쳤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지금의 5%에서 향후 5년간 3%로 급락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잠재성장률 5%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설비투자 증가율이 5.7%는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총저축률과 총투자율을 다시 30%대로 회복시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상승하고 소비가 급증하는 거품경제에 제동을 거는 정책처럼 인기 없는 정책은 없다.
양대 선거와 월드컵 때문에 경제 안정기반이 저해되어서는 안된다.
금년에 1%포인트 성장을 더 하기 위한 무리한 정책은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을 몇년 늦출지 모른다.
hongecon@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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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