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윤리경영, 선택 아닌 필수 .. 吳正煥 <롯데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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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미국 유수기업의 윤리경영 현장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전경련이 마련한 이 프로그램에 참가해 인상 깊었던 것은 윤리경영은 이제 '하면 더 좋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하지 않으면 퇴출된다'는 생존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과 정부가 기업을 이런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스턴에 있는 벤틀리대에서 윤리경영의 표준에 대해 토론을 벌이던 날 미국의 일간지 USA투데이는 대기업의 비윤리 행위를 강하게 비판하는 대형 특집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실물경제가 좋아지고 있는데도 월가의 주가가 계속 빠지고 있는 것은 엔론의 분식회계,아더앤더슨의 부실감사,메릴린치의 주가조작 의혹 등 대기업의 잇단 비리사건으로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또 '미국 기업들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월가는 수년 내 문을 닫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기업윤리에 대한 새로운 규제 법안을 만든다면 미 군수산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제정,시행해 오던 DII(Defense Industry Initiative)의 6개 원칙과 연방법원의 형량지침(Federal Sentencing Guidelines)이 그대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1986년부터 시행된 DII는 작년 말 50개 대기업이 가입할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
또 미정부 당국도 주요 계약의 50%를 이들 기업에 배당할 정도로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FSG는 이미 법원과 검찰이 기소와 양형 기준으로 준용할 만큼 관습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DII 6개 원칙이란 △윤리강령의 제정 △강령의 교육 실시 △내부신고자의 보호장치 △모니터링제도와 자기신고제도의 유무 △모범사례의 공유 △대외적인 신뢰의 확보 등이다.
FSG는 △윤리강령을 시행할 리더십이 확보되어 있는가 △리스크를 사전 감지할 전담기구가 있는가 △체계적인 모니터링제도가 구비되어 있는가 △윤리강령을 교육할 프로그램이 구비돼 있고 그대로 실천하는가 △내부고발제도가 있는가 △윤리경영성과를 측정할 제도가 있는가 △윤리경영 담당 부서를 정기적으로 감사하는가 △경영의 투명성 등이다.
미국 윤리담당임원협의회의 전무 에드워드 페트리 박사는 '미국 법원은 FSG를 채택한 기업이 윤리위반으로 기소됐을 경우 과징금의 80%까지 감면해 주고,그렇지 않은 경우엔 4백%까지 가중처벌하고 있다'고 밝히고,가중처벌에 걸려드는 것은 대부분 외국계 기업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그 속성상 끊임없는 자기 확대와 이윤추구를 최선의 가치로 삼고 있으므로 윤리적 행동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자기 몸집이 커질수록 윤리적 행동을 강요당하는 것을 보면,시장 메커니즘처럼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손'이 기업활동을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벤틀리대의 기업윤리센터소장 마이클 호프먼 교수도 '미국기업이 윤리적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발적이기보다는 정부와 사회의 압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존슨&존슨 같이 윤리경영이 이미 전사적으로 보편화돼 윤리담당 부서가 따로 필요 없을 만큼 핵심역량으로 굳혀진 사례도 있다.
하지만 외국 정부를 상대로 거래하는 거대기업들로서는 윤리와 현실간의 갈등으로 자가당착에 빠져 곤혹스러워 하는 기업도 많다.
그런데도 비싼 비용 및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윤리경영에 몰두하는 것을 보니 무언의 압력이 피부에 와 닿는다.
윤리문제에 관한 한 개발도상국가라 해서 관대하게 대접해 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선진국의 문턱을 두드리는 입장에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식으로 요령을 피워 비윤리적 행동을 한다면 괘씸죄까지 적용받아 가혹한 대접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윤리경영 문제가 이제 '강 건너의 불'이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다.
ohcwj@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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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