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투명성기구(TI)가 21개 주요 수출국을 대상으로 국제교역 부문의 뇌물공여 가능성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4위에 올랐다고 한다. 한마디로 망신스런 일이다. TI 조사가 아니더라도 최근에 터진 최규선 스캔들,파크뷰 아파트 특혜분양 의혹,지방자치단체장의 잇따른 구속 사건 등을 보면 뇌물수수에 대한 도덕불감증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깊고 폭넓게 자리잡고 있는 고질병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맞게 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관료와 금융계 민간기업 사이에 얽힌 부패 때문이었고, 그것을 교훈삼아 금융과 기업시스템을 고치는가 하면 돈세탁방지법 반부패법 등을 제정하는 등 부패척결을 위한 국가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부패문제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는 이른바 정실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사례에서 보듯 소위 '끗발'이 있는 곳엔 뇌물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우리의 현실은 사람의 힘과 재량권이 제도와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정실자본주의가 고착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낙후된 행태를 가지고 부패문제를 해결하기란 백년하청이다. 부패문제를 해결하자면 이같은 낡은 관습을 바꿔야 하는 등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시장경제의 뿌리를 흔드는 암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면 부패공화국이란 오명부터 벗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정치지도자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하고 각종 부패방지 장치가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조사나 수사에 성역이 없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엄격한 법집행과 함께 벌칙을 강화하고 부패 적발률을 높여나가는 등 제도를 보완해나가야 할 것이다. 과감한 규제완화도 필요하다. 정부의 각종 행정규제나 관여도가 심할수록 뇌물이 수수될 소지가 늘어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시장에 맡겨도 좋을 사업을 정부가 인?허가를 받게 하거나, 민간이 알아서 해도 좋을 일을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검은 돈'의 뒷거래를 조장하는 것이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는 민간으로선 뇌물이나 청탁의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자율이 기능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의 활동영역은 가능한한 축소해야 한다. 그래야 부패방지는 물론 건전한 시장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