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여느 해보다 빨리 찾아 왔다. 몇 차례 쏟아진 봄비 이후 갑자기 높아진 기온도 그렇지만 거리 위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예년보다 일찍 온 여름을 느낄 수 있다. 쇄골이 드러날 정도로 목선이 깊게 파인 블라우스와 무릎 위 짧은 길이의 층층이 치마,가느다란 끈으로 발등을 감싸 신는 샌들... 여성복 오브제 디자인실의 채진숙 팀장은 "올 여름 패션 시장의 특징은 노출이 심한 디자인이 특히 잘 팔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여름 핫팬츠나 마이크로 미니스커트,탱크톱 등 노출 아이템이 패션 잡지의 화보를 장식하긴 했지만 정작 매출을 올려주는 제품은 점잖은 디자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첨단 유행 디자인의 "미끼 상품"과 판매호조 상품이 같다고 한다. 그 이유는 뭘까. 패션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적극적인 자기 표현과 함께 페전트 룩(peasant look)의 유행을 원인으로 꼽았다. 데코의 권오향 이사는 "지금까지의 핫썸머 패션이 섹시함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강하고 공격적인 인상이 강했다면 올 여름 패션은 유럽의 시골 농가 처녀를 연상시키는 순수하고 로맨틱한 이미지로 표현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페전트 룩의 대표적인 아이템인 어깨가 드러나는 블라우스는 매장마다 품절 사태를 빚을 정도로 인기다. 또 잔주름을 잡아 자연스럽게 부풀린 장식과 크고 작은 꽃무늬도 반응이 좋은 디자인으로 꼽힌다. 낭만적인 전원풍 패션의 키워드를 살펴보자. 오프 숄더:상반기 빅 히트 아이템은 오프 숄더 블라우스.봄에는 어깨가 살짝 드러날 정도로 목선이 넓은 블라우스가,여름 시즌에는 어깨는 물론 가슴 윗 부분까지 드러낸 과감한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담한 노출로 섹시한 멋을 풍기면서도 잠옷처럼 소매선과 목선에 잡힌 주름은 주근깨 송송 박힌 귀여운 소녀 이미지를 살려준다. 오프 숄더 블라우스의 또 하나의 장점은 보기와 달리 코디하기 쉽다는 점.7부 바지 청바지 스커트 등 어디에나 잘 어울린다. 또 어깨에 캡이 달린 반소매는 굵은 팔뚝을 가려주고 깊게 파인 목선은 넓은 어깨선을 커버해준다. 러플&프릴:쪼글쪼글 잡은 셔링(잔주름 장식)과 하늘하늘한 러플 또는 프릴 장식.극히 여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디테일들이 올 여름에는 의외의 곳에 쓰였다. 한쪽 어깨에서 사선으로 떨어지면서 프릴 장식된 톱,한쪽 어깨와 옆선 한쪽에 셔링을 잡아 비대칭 라인의 묘미를 살린 런닝셔츠,소매에 날개처럼 러플을 단 면 스판 소재 셔츠 등.이제껏 볼 수 없었던 개성적인 여름패션을 선보인다. 티어드 장식(tiered detail):옷을 가로로 절개해 층층이 이어 붙인 장식.치마 뿐 아니라 블라우스 가방 구두에도 이 장식이 활용되고 있다. 흔히 캉캉 치마라고 불리는 티어드 스커트는 길이에 따라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다. 발목 길이의 성숙한 스타일은 역시 같은 느낌의 페전트풍 블라우스와 잘 어울린다. 벨트 또한 여러 겹 가는 끈을 엮어 너풀거리는 디자인으로 선택,옆으로 매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연출한다. 반면 짧은 길이의 티어드 스커트는 치어리더처럼 경쾌한 분위기를 낸다. 아래가 풍성한 라인을 그리는 만큼 상의는 심플하게 입는 것이 코디 원칙.몸에 꼭 맞는 면 티셔츠에 허리선이 짧은 점퍼 또는 데님 조끼를 겹쳐 입는 식이다. 굽이 거의 없는 납작 구두 또는 10cm 높이의 통굽 하이힐 모두 잘 어울린다. 꽃장식:크고 작은 꽃송이가 옷에 내려 앉았다. 유럽의 정원에 피어난 탐스러운 장미부터 작고 소박한 들꽃까지,꽃은 올 여름 패션의 주요 주제 중 하나. 꽃 모양을 단순화한 그래픽이 있는가 하면 진짜 살아있는 꽃처럼 정밀하게 묘사한 프린트도 있다. 천조각을 꽃 모양으로 말아 만든 코사지는 봄부터 인기를 모은 장식 아이템이다. 여름에도 몸에 딱 달라붙는 톱이나 민소매 블라우스와 함께 어울려 페전트풍의 진수를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설현정 객원기자 hjsol1024@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