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구주택.언제부턴가 도시 서민들의 애틋한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보금자리를 연상시키는 단어로 굳어졌다. 옆집이 없으면 쓰러질세라 다닥다닥 붙어서 부둥켜안고 들어서 있는 모습이 안스럽다. 모양새는 이래도 조금만 정감어린 눈길로 바라보면 가끔은 사람사는 인간미가 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정겨움보다는 가슴아픈 서러움이 더 진하게 배어난다. 조금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부아가 치미는 사람도 많으리라.아무리 삼시세끼 해결이 빠듯한 군상들이 사는 집이라고 이렇게까지 무질서하고 무성의하게 지어져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감정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일산4동에 들어선 "볼륨 III". 멋들어진 단독주택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동네의 들어선 다가구주택이다. 지상 3층,연면적 1백51평의 아담한 규모다. 1층엔 깔끔한 카페가 들어섰고 2,3층에 4가구의 집이 나란히 배치됐다. 이 집은 안과 밖이 일치하는 "솔직한 집"이다. 실내 배치된 공간에 따라 외형이 자연스럽게 맞춰진 탓이다. 공간 실효성과 활용가치를 높이기위해서는 안팎이 정직해야한다는 건축원칙에도 충실하게 짜여져있다. "볼륨 III"는 앞쪽과 양측면이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앞쪽은 베란다와 처마를 수평으로 길게 배치해 수평성을 강조했다. 2층 중간에는 수평성의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독특한 모양의 캔틸레버(돌출 가리개)를 설치해 액센트를 줬다. 오른쪽 측면은 외벽 전체를 3등분으로 나누고 중간에 좁고 긴 창문을 1층까지 내렸다. 각 세대간 구분이 확연히 드러난다. 벽면도 그냥 밋밋하지않다. 뒤로 가면서 조금씩 요철을 줬다. 이 바람에 노출콘크리트가 주는 단순함에 생동감이 느껴진다. 중간에 수직으로 길게 만들어진 창문이 배치된 공간은 공용 계단부분이다. 이로인해 답답하게 남아있을 뻔한 실내 계단이 화사한 햇빛과 다양한 외부 풍경이 스며들어 살아있는 공간으로 변했다. 왼쪽면 역시 단순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 벽체 외부에 잘게 그은 빗살무늬로 변화를 주면서 작은 창문을 군데군데 배치했다. "볼륨 III"는 비록 작은 집이지만 이렇듯 외형에 절제된 구성미와 조형미가 묻어나게 배려를 했다. 이런 노력은 단순히 외형에 끝나지 않는다. 내부공간도 외형에 구성에 맞게 이뤄졌다. 네모 반듯한 박스형에 수익 극대화만을 목적으로 임대공간만을 빽빽히 몰아넣는 기존 주택과는 완전히 딴 판이란게 이런 점 때문이다. 실내 구성을 보면 여러가지 재미있는 부문이 눈에 띈다. 우선 다가구주택이 서민주택이란 점을 충실히 살려내고 있다. 우선 1층의 중앙현관이 돋보인다. 현관에는 정면으로 통하는 문이 없다. 양옆으로 드나드는 입구를 통해 만나도록 돼 있다. 입구를 통과하면 중앙현관에서 만나 위층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만나 얼굴을 익힐 수 있게된다. 여러가구가 사는 공동주택이란 점을 배려해서 만들어낸 공용공간이다. 손바닥만한 공간이라도 놀리면 안되는 다가구주택의 특성을 잘 살린 멋진 공간이다. 실내공간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 집은 비록 좁은 집이지만 외부와의 소통성이 좋고 여유가 묻어나게 꾸며졌다. 이 건물내 집들은 한 가구를 빼고는 모두 거실과 주방,2개의 방으로 이뤄졌다. 이들 주요 공간이 모두 밖을 보고,신선한 공기를 맞을 수 있도록 치밀하게 구성됐다. 이를 위해 방과 방을 벽쪽에 붙이면서 되도록이면 띄어놓았다. 한옥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채나눔 개념이다. 지붕층과 붙어있는 3층 가구엔 하늘이 개방된 중정이 있다. 중정을 중심으로 가장자리를 따라 거실과 방,주방들이 배치됐다. 중정에서 쏟아지는 신선한 공기와 자연향내가 싱그럽다. "볼륨 III"는 눈만 돌리면 지겹게 보여지는 다가구주택과는 수준이 다르다. 인근 고급주택들과 비교해도 기죽지않을만큼 당당한 멋이 있다. 남들을 의식한 현란한 치장과 과장된 겉치례를 하지않았지만 아름답고 풍요롭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 -------------------------------------------------------------- 건축메모 규모:대지면적-106.99평,연면적-151.97평,건축면적-59.21평,지상3층. 위치: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일산4동,구조-철근콘크리트조. 설계:비추건축 최인석 (02)545-4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