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모멘텀이 누그러든 상황에서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 장관이 '환율 하락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해 외환시장을 넘어 정부와 수출업계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신국환 장관은 철강과 자동차를 둘러싼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인 상황이어서 이같은 환율 발언은 수출확대를 표방한 활동과 상충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국환 장관의 발언이 나가자 15일 뉴욕 등 해외시장에서 역외세력은 달러매도에 적극 나섰고 이에 따라 이날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1,271원까지 하락,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는 등 하락폭이 커졌다. 최근 환율 하락으로 수출채산성 악화를 우려한 수출업체들의 불만은 커졌고 지난 4월부터 플러스로 전환한 수출에서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기대한 정부 내에서도 긴장감이 역력하다. ◆ 수출 장관의 월권행위? = 신국환 산자부 장관은 현지시각 15일 경제연구소들의 추산임을 전제로 "하반기 환율이 1,250원대로 하락할 것"이라며 "4월이후 국내 수출이 호전돼 올해 무역흑자가 1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환율 하락이 국내 수출업체들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강조, 환율 하락을 용인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같은 발언과 관련, 산자부 수출과 관계자는 "환율 하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 측면과 함께 긍정적인 측면이 함께 있음을 지적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기업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 장관의 발언은 국제 투자은행(IB)의 관심을 끌만한 것으로 역외선물환(NDF)시장에서 달러매도를 유발했다. NDF환율은 전날 뉴욕에서 연중 최저치인 1,275원까지 떨어뜨렸으며 이날 국내 시장에 여파가 이어져 환율은 이날 장중 지난해 12월 6일 장중 1,268.70원까지 내려선 뒤 가장 낮은 수준인 1,271.00원까지 미끄러졌다. 현재 환율 수준이 당장 수출에 큰 영향을 가하지는 않고 있지만 최근 급락세는 심리적으로 수출업체에 압박과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셈.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산자부 장관의 발언이 역외매도세를 유발시켰으며 개장초에 이를 반영했다"며 "그러나 단기 급락에 따른 여파로 장중에는 경계감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시장에서 민감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긴 하다"며 "산자부는 직접적으로 환율을 다루는 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받아들일만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전에 금리 문제를 들먹여 채권시장을 흔든 바 있는 신 장관은 환율을 관장하는 공식적인 정부나 외환당국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음에도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듭 일고 있다. ◆ 재경부·무역 업계 불편한 심경 =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연구소의 전망치를 그대로 인용해 발언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다"고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아울러 "지난번에도 이같은 발언이 전해져 시장에서 혼란을 가져온 적이 있다"며 "시장 딜러들은 이런 발언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다만 수출업체들의 심리를 자극한 측면이 있음을 지적했다. 하락 추세의 과정에서 이같은 발언으로 심리적 동요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생각 못했던 부분을 얘기한 것은 아니다"며 "다만 환율 하락을 막아줘야 할 부처의 장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해서 수출업체들이 당황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무역업계에서도 수출과 관련, 시기가 좋지 않을 때 엉뚱한 발언이 나와 찬물을 끼얹은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무역협회 한 관계자는 "장관 발언은 경쟁력 강화차원에서 중장기적 과제이긴 한데 발언 시점이 좋지 않다"며 "수출회복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지 않고 미국 경제회복 속도에 대한 논란이 있는 시점에서 수출업체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적정환율에 대한 조사에서도 보여지듯 조사가 끝난 후에도 설문지 회수가 계속되고 있다"며 "특히 중소업체들이 최근 급락에 대해 당황한 눈치며 열을 좀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수출 회복 미온적 = 특히 최근 수출 회복세가 다소 주춤거리는 태세를 보이고 있어 환율에 대해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상태다. 내수가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나 향후 본격적인 경기회복의 '열쇠'로 인식되고 있는 수출회복이 예상보다 좋지 않을 경우 한국 경제회복에 좋은 영향을 줄리 만무하다.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가격이 최근 2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최근 반등세를 보이고 있으나 지난 3월초 4.38달러까지 올랐던 128메가D램은 비수기를 맞아 하락했고 미국 경기 회복이 미온적인데다 보호무역을 강화, 수출 전선이 반드시 희망적이진 않다. 삼성경제연구소는전날 '최근 경기흐름과 향후 전망'이란 보고서를 통해 내수 진작으로 회복세를 보인 한국경제가 하반기에는 수출주도로 성장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소는 연간 수출이 지난해에 비해 8% 늘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수출 회복 전망에 원화절상 및 해외 수요감소는 수출 증가세를 둔화시킬 수 있다. 아직 환율에 의한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측면이 강한 국내 기업들은 환율 하락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일부 업체는 미국 정부의 세이프가드 조치에 원화가치도 올라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2/4분기 이후 수출 전망을 조사한 결과, 수출증가율이 한자릿수에 머물거나 감소할 것이라고 응답 한 기업이 응답업체의 74.5%에 이르렀다. 미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과 환율 하락 등에 기인한 것으로 정부가 2/4분기 이후 수출증가율이 두 자릿수에 달해 경기회복을 주도할 것으로 분석과 대조된다. KDI도 최근 수출이 지난해의 낮은 실적을 감안하면 기술적 반등요인이 크게 작용, 아직 높은 수준의 수출회복세로 보기 어렵고 반도체 가격 하락과 미국경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의 조정 등이 향후 경기상승폭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따라서 신국환 장관의 발언 의도가 기업 경쟁력 강화 측면의 중장기적 시각이라고 하더라도 현 시점의 중요성에 비춰 볼 때 업계나 정부 내에서 시선이 곱지 못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주무부처의 공식적인 입장에서 벗어난 견해이고 수출 주관 부처의 장관이라 위치를 봤을 때 가벼운 '립서비스'보다는 '신중함'에 서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경닷컴 이준수·이기석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