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지난해 11월말 이래 처음으로 1,270원 이하로 떨어졌다. 달러/엔 환율의 127엔대 하락과 사흘째 이어진 외국인 주식순매수에 따라 하락 요인이 힘을 발휘, '하락 추세'를 방증했다. 특히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의 뉴욕발 '환율 하락 용인' 시사 발언이 가세, 시장과 수출업체의 당황스러움을 유발했다. 그러나 재정경제부는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단기간에 1,270원이 붕괴되는 수준까지 치달음에 따라 '바닥 확인 과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당국의 속도조절용 개입여부가 '추가 하락선'이 어딘지 가름하는 변수가 될 전망이다.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7.70원 내린 1,269.80원에 마감, 종가기준으로 연중 최저치이자 지난해 11월 29일 1,269.00원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가리켰다. 개장초 달러/엔 하락과 산자부 장관의 발언을 빌미로 급락했던 환율은 장중 수급 균형으로 정체되는 듯 했다. 그러나 장 후반들어 외국인 주식순매수분 공급과 달러매수초과(롱)포지션 처분이 잇따르면서 최저치 경신을 거듭했다. 오전중 정유사 중심의 결제수요가 유입됐으나 낙폭이 커지면서 움츠러들었던 반면 네고물량이 서둘러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 하락기의 전형적인 패턴이 나타났다. ◆ 지지선 여부 불투명 = 현재 뚜렷하게 지지선으로 내세울만한 레벨이 없다. 주변 흐름을 얼마나 반영할 지가 변수이긴 하나, 대세 하락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란 견해에 시장의 큰 이견은 없다. 방향이 아닌 속도가 문제인 셈이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1,270원은 큰 의미는 없으나 대세하락 분위기에서 단기 저점으로 인식됐던 선을 깼다"며 "산자부 장관이 자신의 역할이 아님에도 엉뚱한 발언으로 시장심리를 얼어붙게 했으며 수출업체를 생각하는 발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나 외환당국도 떨어지는 것에는 불만이 없으나 속도가 빠른 것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는 것 같다"며 "당초 이번주중 1,265원까지 봤으니까 내일 이 선까지 내릴 지, 반등 조정될 지가 관심이며 달러/엔의 급등이 없으면 반등할 힘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외국계은행의 다른 딜러는 "개장전 신국환 장관의 발언이 힌트를 줬고 오후에 주식자금이 1억5,000만∼2억달러 가량 쏟아지면 급락했다"며 "전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기 때문에 하락은 문제가 아니고 중장기적인 수출경쟁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한은의 코멘트가 향후 밑을 터 준 것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분위기가 좀 더 하락쪽으로 강화돼 달러/엔이 반등해도 위쪽으로 많이 가기는 어렵다"며 "내일 거래는 달러/엔의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 수준이면 1,267∼1,272원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 하락 재료들 = 전날 뉴욕에서 증시 숨고르기와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틀간의 상승을 접고 127.59엔으로 하락한 달러/엔은 이날 일본 정부의 엔 강세 저지발언으로 127.84엔까지 반등했다. 그러나 추가 반등이 어렵자 달러/엔은 한동안 보합권에서 정체됐다가 반락세를 강화, 한때 127.28엔까지 내려섰으며 오후 5시 10분경 127.39엔을 기록중이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은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565억원, 263억원의 매수우위로 사흘째 주식순매수를 이었다. 향후 달러공급 요인으로서 작용하게 됐다. 신국환 산자부 장관은 현지시각 15일 경제연구소들의 전망치임을 전제로 "올해 무역흑자가 100억달러에 달해 하반기 환율이 1,250원대로 하락할 것"이라며 "환율 하락이 국내 수출업체들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언급, 환율 하락을 용인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와 외환당국은 서둘러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밝혔으나 시장은 일단 하락쪽을 선택했다. ◆ 환율 움직임 및 기타지표 = 전날보다 0.50원 높은 1,278원에 개장한 환율은 다음 거래에서 정상적으로 하락 반전, 9시 42분경 1,272.30원까지 미끄러졌다 이후 추가 하락이 저지된 환율은 10시 18분경 1,273.60원까지 되올랐으나 물량공급에 되밀려 1,272∼1,273원을 오가며 횡보한 끝에 1,273원으로 오전장을 마쳤다. 오전 마감가와 동일한 1,273원에 오후장을 연 환율은 한동안 1,272..80∼1,273.20원에서 등락하다가 달러/엔 하락과 달러매수(롱)플레이가 꺾이며 3시 15분경 1,270.80원으로 미끄러졌다. 이후 환율은 1,271원선을 배회하다가 장 막판 외국인 주식자금 강화, 4시 29분경 이날 저점인 1,269.00원까지 하락했다. 이날 장중 고점은 개장가인 1,278.00원이며 저점은 올들어 최저치이자 지난해 12월 6일 1,263.80원이후 가장 낮은 1,269.00원을 기록했다. 환율 변동폭은 9.00원에 달했다. 이날 현물 거래량은 서울외국환중개를 통해 18억7,120만달러, 한국자금중개를 통해 7억1,170만달러를 기록했으며 스왑은 각각 2억1,400달러, 2억7,890만달러가 거래됐다. 17일 기준환율은 1,272.30원으로 고시된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