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부처님 오신 뜻..원택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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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면 부처님의 탄생게(誕生偈)가 곧잘 회자되곤 한다.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흰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서 부처님을 잉태했다.
그후 인도의 풍습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는 길에 룸비니 동산에서 휴식하던 중 마침 아름답게 꽃이 핀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잡으려는 순간,오른쪽 옆구리로 부처님이 태어났다고 한다.
아기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걸음을 걷고는 한 손으로는 하늘을,또 한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홀로 존귀하다.
모든 세상이 다 고통 속에 있으니 내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고 우렁차게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탄생게'이다.
어떻게 태어나자마자 사방을 걸을 수 있으며,또 말까지 할 수 있느냐며 웃어 넘기는 사람도 많지만 이는 후대의 기록자들이 실존 인물인 석가모니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일 따름이다.
그보다는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존귀하므로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모두 구제하겠다는 대자비의 서원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부처님은 아버지인 정반왕이 바라던대로 위대한 군주의 길로 가지 않고,큰 깨달음을 얻어 이 세상의 뭇 중생들을 환희와 기쁨의 세계로 인도할 수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또한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 정각(正覺)을 이루고 나서는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와 같은 지혜덕상이 있건만 분별망상으로 깨닫지 못하는구나!"라고 했다.
성철 스님은 경전의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부처님의 이 말씀이 불교의 근본 시작이면서 끝"이라고 했다.
석가모니께서 인류에게 던져둔 이 한마디가 인류 사상 최대의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절대자가 될 수 있느냐,없느냐에 대해 논란이 분분했지만 부처님처럼 명백하게 누구든지 절대적이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공공연히 선포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 속에 무한한 근본능력이 있음을 처음으로 소개한 것이다.
스스로 바로 깨쳐서(正覺) 우주만법의 근본을 바로 알고보니 모든 중생이 모두 부처와 똑같은 무한하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능력만 발휘하면 스스로가 절대자이고 부처이니 절대자가 따로 있고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면 어째서 중생들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늘 중생 노릇만 하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에게 무한하고 절대적인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별망상에 가려서 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로소 우리가 성불(成佛),즉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만일 우리가 깨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한번 생각해보자.
땅 밑에 금이 많이 있다면 땅을 파고 금을 캐내겠지만,금이 없다면 금을 찾겠다고 땅을 파는 헛일을 하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중생에게 부처와 똑같은 그런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깨치는 공부를 해도 헛일일 것이다.
금이 없는 곳을 파는 헛일을 하듯이 말이다.
세계의 학자들도 인간성에 대해 절대적인 능력을 인정하는 것을 인류 역사상 대발견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그처럼 되고자 하는 서원을 각자의 마음에 간절히 새겨야 한다.
과학이 발달하고 인터넷 세계가 넓어질수록 우리들의 인성은 더욱 메말라 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요즈음이다.
범죄도 무차별적이고 더욱 잔인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각자의 지혜덕상은 보지 못하고 감각적이고 표피적인 감정충동에 자신을 맡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불교계는 거리거리마다 등불을 켜고 국가적인 대사인 월드컵 대회의 성공을 염원하고 있다.
이웃 종교에서도 이날을 함께 기뻐하면서 같은 염원으로 기도하고 있다.
모두가 거리거리에 켠 등불의 공덕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내면의 지혜덕상의 등불을 밝혀내는 좋은 날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