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주먹으로 시작,미국 거대 기업을 일궈낸 '업계 풍운아'들이 올들어 줄줄이 낙마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1990년대 정보통신 산업팽창과 주가거품을 등에 업고 기업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주목된다. 경영실적 악화와 회계조작 등으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는 점도 똑같다. 몰락한 창업주의 전형은 세계 최대 에너지거래 기업인 엔론의 케네스 레이 전 회장(59). 지난 1월 권좌에서 물러난 그는 수차례 의회청문회에 불려나가 엔론의 회계장부 조작 등 부정행위에 대해 증언하는 수모를 당했다. 레이 전 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최고경영자(CEO)에서 쫓겨난 광통신망업체인 글로벌크로싱의 개리 위닉 전 회장(54)은 수십억달러의 부채를 남겨 주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레이 전 회장과 위닉 전 회장은 한때 '신경제 전도사''정보통신업계 선구자'로 불렸지만 지금은 '경제를 거덜낸 사기꾼'으로 몰리고 있다. 이달 들어서도 창업자들의 퇴진은 계속되고 있다. '통신업계의 살아있는 신화'였던 월드콤의 창업자 버나드 에버스 전 회장(60),거대 케이블TV망업체 아델피아 커뮤니케이션의 존 리가스 전 회장(77) 등이 그들이다. 회계조작을 통해 M&A 과정에서 발생한 부실을 숨겼다는 의혹이 직접적인 이유다. 창업자가 수난을 겪기는 미국 뿐만이 아니다. 스위스와 스웨덴의 합작기업인 엔지니어링 그룹 ABB의 퍼시 바네빅 전 회장(61)은 지난해말 경영부실의 책임을 지고 은퇴했다. '올해 유럽의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에 네번이나 선정돼 유럽의 '잭 웰치'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지금은 대규모 경영손실에도 불구, 거액의 은퇴연금을 받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일본의 초저가 브랜드 '유니클로' 신화의 주역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전 사장(53)도 최근 경영인의 꿈을 접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양복점을 일본 최대의 의류업체로 키워 샐러리맨의 우상이 된 그는 경영정상화에 실패하자 스스로 자리를 떠났다. 창업자들의 잇따른 퇴진과 관련,심리학자인 대니얼 골드먼은 "창업자들은 진취적이어서 팽창전략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불경기가 길어지고 경제의 거품이 꺼질 때에도 공격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해 좌초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분석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