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귀포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축구대표팀의 기자회견장에서 한 외신기자가 히딩크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기자는 96년 열렸던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경기 결과를 끄집어 냈고 히딩크 감독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며 "다음 질문 해 주세요(Another questions)"라고 말했다. 순간 기자회견장은 웃음 바다가 됐고 히딩크도 기자의 질문에 자세히 답변함으로써 어색할 뻔 했던 분위기는 다시 좋아졌는데 이처럼 히딩크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96년 6월 18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렸던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네덜란드는 잉글랜드에 1-4로 참패했고 당시 네덜란드의 사령탑은 감독을 맡은 지 1년이 갓 지난 히딩크였다. 히딩크로서 이 패배가 뼈아팠던 이유는 85년 이후 월드컵 예선이나 유럽축구선수권, A매치에서 네덜란드가 잉글랜드에 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8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네덜란드는 3-2의 승리, 같은 해 A매치에서 2-2 무승부를, 94년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유럽예선이 열렸던 93년 4월과 10월에는 각각 2-2, 2-0을 기록하며 우위를 지켜나갔다. 그런데 히딩크가 감독을 맡은 지 1년만인 96년 1-4의 참패라는 결과가 나오자 그로서는 자존심이 구겨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축구 종가라고 자처하는 잉글랜드에서는 이날 팀이 크게 이기자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제 히딩크는 고국 네덜란드를 떠나 한국의 선수들로 잉글랜드에 맞서지만 그때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을 것이다. (서귀포=연합뉴스) 최태용기자 c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