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3일자) 달라진 여건 반영해야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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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증권3사 매각을 위해 푸르덴셜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금융감독위원회가 현대증권이 3자배정할 신주를 7천원에 발행할 수 있도록 '유가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을 고치려는 것은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신주발행 기준가가 1만~1만2천원인 주식을 7천원에 넘긴다는 건 누가 봐도 '덤핑'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현행 규정은 할인율이 10%가 넘는 3자배정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금감위원장이 인정할 경우 가능하도록 예외규정을 신설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편법행정의 전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금감위의 주장은 푸르덴셜을 협상이 결렬된 AIG와 동일한 협상주체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전 협상 조건의 승계가 가능하고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지난 3월 현대증권이사회가 주금납입일을 3월말에서 7월말로 연장하면서 "AIG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 수준의 투자자인 경우 동일성이 유지되는 것으로 본다"고 결의한 내용을 들고 있다.
그러나 협상 대상이 바뀌어도 동일성을 지니려면 공개입찰 과정을 거쳐 처음부터 협상우선순위를 정해두었다든지 해야 하지만 그런 절차가 없었다.
또 매각문제에 관한 한 현대증권 이사회는 금감위의 수발을 드는 '억지춘향'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8천9백40원으로 결정됐던 신주 발행가를 지난해 9월 7천원으로 낮추는 과정에서 이미 드러났다.
주금납입일을 7월로 늦춘 지난 3월의 현대증권 이사회 결의도 금감위의 규정개정 약속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푸르덴셜에 주당 7천원에 넘겨주기 위해 갖가지 무리수를 동원해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다음 협상자가 아무리 이전 협상자와 같은 조건을 요구한다고 해도 관련규정까지 고쳐가며 청을 들어준다는 것은 정부의 협상력을 의심케 하고 제값받기를 포기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현대증권은 2000년 2천6백억원 적자에서 지난해엔 1백92억원의 흑자로 돌아서는 등 경영사정이 호전되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매각대상 자산의 가치가 달라졌고 협상대상이 바뀌었는데도 깨진 협상조건만 살리려고 하는 금감위의 속내는 참으로 모를 일이다.
한번 바꾼 규정은 되돌리기 어렵고 두고두고 선례가 된다.앞으로도 주식 3자배정을 통한 기업매각과 할인율 문제가 등장할 텐데 당장의 협상이 어렵다고 해서 규정부터 고친다면 다음 협상까지 미리 양보하는 꼴이 되고 만다.
현대증권 매각협상은 마땅히 순리대로 진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