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화학연맹 소속 86개 사업장,1만5천여명의 근로자들이 예정대로 22일 끝내 파업을 강행했다. 사업장 노조의 파업 참여도가 예상보다 낮았다는 것은 상급 노동단체의 강경투쟁 방침이 대다수 사업장 근로자들에게는 먹혀들지 않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하겠다. 민주노총측은 오늘부터 보건의료노조와 사회보험노조 등이 파업에 가세하고 내일은 민주택시연맹 사업장들이 파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파업을 결의했던 한국노총 산하 금융노조가 사용자측과 주요쟁점에 사실상 합의하고 관광노련도 파업방침을 전격 철회함으로써 연대파업이 우려했던 만큼의 파괴력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번 파업에 대규모 제조업체와 항공 철도 등 월드컵대회와 직접 관련이 있는 공익사업장들이 참여를 거부한 것은 상급 노동단체들의 무모한 정치적 투쟁방식과는 달리 대다수 근로자들이 분별력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월드컵을 불과 일주일 정도 앞두고 손님들은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서울 중심지에서 손님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을 골라 '노숙투쟁'이다 뭐다하여 밤을 새우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 낯뜨거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파업 주도세력들은 "원래 5,6월은 임단투쟁이 집중돼 시끄러운 게 당연하다"며 짐짓 월드컵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세계인의 잔치를 볼모로 한 노동계의 집단이기주의에 쏟아지고 있는 국민적 지탄에 귀를 막는다면 앞으로 노동계는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이때쯤이면 '춘투'(春鬪)로 시끄러워야 할 일본 노동계가 월드컵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조용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민주노총측은 "사용자측이 단체협상의 산별교섭 원칙에 동의하면 파업을 철회할 수 있다"며 새로운 협상조건을 내걸었지만 사업장별 근로조건이나 임금수준 등의 격차가 큰 국내산업계 현실을 고려할 때 이같은 조건은 상급 노동단체들의 영향력만 키우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비현실적인 제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노동계는 더 늦기전에 연대파업을 철회하고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국민적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정부는 잔치에 재를 뿌리겠다는 위협에 굴복해 주5일 근무제 등 핵심쟁점에서 노동계 달래기에 급급한 결정을 내려선 안된다. 끝까지 설득을 포기해선 안되지만 불법파업이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정대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