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공 차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미 삼국시대에 공차기 놀이인 축국(蹴鞠)이 성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엔 쇠가죽 속에 털이나 겨를 넣어 공처럼 만들어 찼다고 하는데,'삼국유사'에는 김유신이 김춘추와 축국을 하면서 그의 옷자락을 밟는 바람에 옷고름이 찢어졌다고 적혀 있다. 중국의 '구당서(舊唐書)'에도 고구려 사람들이 축국에 뛰어났다는 대목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공을 차는 것은 경거망동한 행동이라 해서 군대훈련에서나 축국을 했고,개화기 이후 서양식 축구가 소개되면서는 주로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공차기를 즐겼다. 원래 축구를 좋아했던 우리 국민들은 공이 귀했던 탓에 60년대 들어서도 시골에서는 새끼줄을 말아 공 대신 사용했으며 소나 돼지의 오줌통에 바람을 넣어 차기도 했다. 동네축구라고는 하지만 승부는 엄격했고 어쩌다 골을 넣으면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질러댔다. 장난꾸러기들은 공중제비를 돌며 승리를 만끽했다. 지금의 '골 세러머니'인 셈이다.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축구의 진수는 골잡이가 골을 넣는 장면일 것이다. 득점을 한 선수는 극적인 효과를 노리며 열광하는 관중을 향해 골 세러머니를 펼친다. 94년 미국 월드컵 때부터 더욱 다양해지기 시작한 골 세러머니는 상대 골문의 그물을 쥐고 흔들거나 개선장군처럼 코너 깃발을 움켜 잡기도 한다. 선수들이 모여 아기를 어르는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아프리카 선수들의 경우는 배꼽을 드러낸 채 민속춤을 춘다. 골 세러머니는 이제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우리 골잡이들도 황새 세러머니,독수리 세러머니,갈지자 세러머니 등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주 스코틀랜드전에서 두 골을 집어 넣은 안정환의 골 세러머니는 반지에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이 장면은 다음날 신문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했다. 골보다 황홀한 순간의 '연기'로 각광받는 골 세러머니가 이번 한·일 월드컵에서는 어떤 모습을 선보이게 될지 기대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