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 치고 자식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도 그랬듯이,아들에 관한 문민 대통령들의 사연도 그리스 신화를 닮았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는 다이달로스라는 아버지와 아들 이카로스가 살았다. 예술가이자 발명가인 아버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꾀를 가르쳐 준 벌로 미로의 감옥에 갇힌다. 그것은 다이달로스가 만든 당대의 걸작품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미로를 빠져 나오지 못했다. 기억력이 약한 것이 탈이었다. 그는 감옥에 갇힌 채 새들이 떨어뜨리는 깃털들을 주워 양초밀랍을 발라가며 날개를 만들었다. 마침내 감옥을 탈출할 정도의 커다란 날개가 완성됐다. 아버지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그 날개를 건네면서 당부했다. "아들아,너무 높게 날지 말아라.햇볕이 뜨거워 밀랍이 녹는단다. 꼭 중간정도의 높이로 날거라.그래야 너도 살고 나도 살게 된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간곡한 당부도 아랑곳 않고 높이높이 날았다. 위에서 내려다 본 감옥과 섬은 그저 조그만 터럭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아들은 오만해져 더 높이 날았다. 그러자 뜨거운 태양이 밀랍을 녹였다. 그들은 추락하고 말았다. 아들 문제가 정국에 영향을 줄 것 같기에,김대중 대통령도 끝내 당적을 버렸다. 민주당에는 안된 일이지만,국민의 편에서 보면 오히려 잘 됐다. '헛간이 완전히 타버리니,이제는 별까지 볼 수 있게 됐네'라고 읊은 일본 하이쿠 시인의 시처럼,새로운 국정운영의 여지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실패에도 보기 좋은 실패가 있고,나쁜 실패가 있다. 그 중에서도 과거에 보았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가장 역겨운 실패인데,김대중 대통령은 그 덫에 걸리지 않기를 바란다. 한때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사람들이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고 해서 서글퍼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소신있는 국정운영을 위해 그것마저도 더 잘 된 일이다. 물론 김 대통령이 탈당했다고 해도 아들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아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유령처럼 부풀려지게 돼 있다. 그들에 관해 그 어떤 이야기를 갖다 붙여도 기사가 되고 뉴스거리가 된다. 그들이 죽은 진시황제와 골프를 치고 왔다고 해도 믿게끔 돼 있다. 그래서 그 문제에 관해서는 아예 신경을 끊어야 할지도 모른다. 남은 임기 동안 김 대통령은 두가지 일을 매듭지었으면 한다. 첫째,북측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치적 관계설정에 관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이래 추진되던 이산가족 상봉,남북철도 연결,남북경협과 같은 대북 과제들이 따오기처럼 처량하기만 하다. 대북화합 이벤트들이 연이어 터지고는 있지만,풀릴 듯 풀릴 듯해도 뭐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요리해나가는 김 위원장의 정치 술수에 불쾌하기만 하다. 오열하는 이산가족에게는 서로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피눈물 흘리며 헤어지는 동족의 만남에 대한 여린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설면회소 하나쯤 설치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텐데….이산가족 상봉 과제 하나만이라도 업그레이드 했으면 한다. 또 다른 과제는,취임초 약속했던 교육대통령의 그 모습을 채워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1백% 취학률을 자랑한다는 우리 초등교육 실정도 알고 보면 부실하기 그지없다. 전국 초등학교 어린이 1백명 가운데 5명 정도는 읽기와 셈조차 못하고 학교를 마치고 있다. 기초교육을 부실하게 놔둔 나라 치고 건강한 나라는 없다. 어른들 학습자세 역시 낙제감들이다. 1년에 책 한권 읽지 않는 국민이,스스로 문화인이라고 우긴다고 문화인이 되는 게 아니다. 앞으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겁부터 난다. 레저천국을 만든답시고 가는 곳마다 온천이나 파놓을 것 같아서다. 교육대통령,평화대통령이라면 이런 과제들을 놔둔채 임기를 끝낼 수는 없다. 삶에서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데 있다고 한 넬슨 만델라의 충고를 따른다면,김 대통령은 오히려 지금부터 새로운 일을 할 적기이다. 우리는 그에게서 희망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마지막 남은 몇달을 의미있게 일하는 인자한 평화대통령,고마운 교육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joh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