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이 봇물을 이루는 요즘 원로시인 김춘수씨의 '사색사화집'(현대문학,1만원)은 여러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평소 좋아하던 시를 뽑아 감상을 보탠 형식이 아니라 시를 설명하기 위해 작품을 예로 든 시론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등학교 및 대학 1~2년생을 위한 시 교과서에 가깝다. 시 이론서를 두루 꿰고 있는 노시인이 울창한 시의 숲으로 안내한다.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가집은/초저녁이면 안팎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복쪽재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짱짱 짱짱 쇳스럽게 울어대고/밤이면 무엇이 기와골에 무리동을 던지고 뒤울안 배낡에 째듯하니 줄등을 해여달고' 김씨가 '피지컬한 시'로 분류한 백석의 '외가집'이다. 김씨는 시를 '전통서정시''피지컬한 시''메세지가 강한 시''실험적인 시' 넷으로 나누고 그에 해제를 붙였다. '피지컬한 시'는 이미지 묘사가 중심이 되는 것으로 일종의 '시네포엠'이라 할 수 있다. 판단은 감독이 하게 돼 있고 감독은 곧 독자다. '메세지가 강한 시'는 독자를 구속하고 시인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한다. 유치환이 "참된 시는 마침내 시가 아니어도 좋다"고 했을 때 이는 시의 장식성을 질타한 말이다. 그러나 김씨는 시란 정신의 안정제이기 때문에 예술공리주의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소설이 문체인 것처럼 시는 화술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김씨가 예술의 유희성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무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려오는 것은 발작적 행동에 불과하다며 스캔들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