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KT지분을 조속히 처분하지 않을 경우 정부 정책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할 것이다." 양승택 정통부 장관은 KT지분 11.34%를 매입한 SK의 행위가 정부의 KT민영화 취지를 퇴색시켰다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SK가 말을 듣지 않으면 모든 수단을 동원,직ㆍ간접적인 '벌'이라도 가하겠다는 것일까. 일본이 잘 나갈 때의 얘기다. '넘버 1 일본'이란 책에서 보겔(E Vogel)은 일본 통산성이 어떻게 업계의 자발적 협조를 얻을 수 있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통산성의 정보력과 분석력,정부와 기업 상호간 높은 이해도와 함께 보겔은 마지막으로 '숨은 벌(罰)'의 논리를 지적한다. 숨은 벌의 논리란 협조적인 기업에는 상응하는 보답을,비협조적인 기업에는 '숨은 벌'이 도사리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권고 지침 조정 등의 용어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건 아니지만 실제적으로는 구속력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관료주의'의 압축이다. 이런 관료주의가 차라리 업계도 인정할 만한 '유능한' 정부의 것이라면 그래도 봐줄 구석이 있는지 모르겠다. KT지분 매각 결과와 관련,정부가 SK에 경고하고 나섰지만 정작 탓해야 할 것이 바로 정부 자신의 '무능함'이라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부와 업계간 묵시적 교섭으로 이뤄질 공감대를 말하는 이른 바 '사전(事前)정책조작이 가능한 범위'부터 정통부는 잘못 생각했다. 무슨 연막을 폈건 말을 어떻게 바꿨건 그것은 SK 스스로 비용을 치를 일일 뿐 SK 입장에서는 주어진 룰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거니와 KT 민영화의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가 향후 통신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재계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면,이런 것을 감안해서 정통부가 처음부터 비공식적이고 내부적인 이런 '정책조작 범위'를 최소화했어야 했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명시적 룰(rule) 설계에 그만큼 소홀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피해야 할 시나리오는 배제되고 의도하는 시나리오가 높게 나올 경우를 상정,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런 방향으로 룰을 설계하는 것은 기본이다. 정통부 스스로 명명했듯이 '전략적 투자가'라는 기업들이 '전략적 행동'을 할 것임은 너무나 당연한데도 SK변수 삼성변수 등 돌발적 상황을 애당초 생각치 못했다면 그것은 차라리 무능의 탓으로밖에 볼 수 없다. 정통부 고위관계자가 이제 민영화 이슈는 끝나고 남은 것은 경쟁정책이라고 말했다는 것도 생각하면 너무 우습다. '민영화 따로 경쟁정책 따로'가 아닐진대 결과적으로 경쟁정책에 대한 부담을 훨씬 키워 놓은 꼴이 됐으니 말이다. 기업이 정부정책에 도전한 것인지,스스로의 무능함이 초래한 문제인지부터 제대로 따지는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논설ㆍ전문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