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相民 칼럼] 정부가 꼼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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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이 상책이라는 말이 있다.
기교에 치우친 묘수보다는 책략이 없어 보이는 정공법적인 방법이 좋다는 뜻일 것이다.
사이드 암이나 언더 스로의 기교파보다는 오버 스로의 정통파 투수가 더 믿음성이 있어 보이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사안이 중하면 중할수록 지나친 기교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편법이나 잔재주는 반드시 후유증을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은행 노사간에 오는 7월1일부터 주5일 근무제를 도입키로 합의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당국자들이 한마디 말도 없는 까닭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은행이 쉬게 되면 결과적으로 거의 대부분 기업들도 토요휴무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게 너무도 분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전체 나라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중대한 사안을 은행 노사가 알아서 결정해도 좋다는 뜻인지,만사를 재경부나 금감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있는 은행장들이 이 문제만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자율을 행사했는지,한마디로 기이한 느낌이다.
은행 노사간 합의로 주5일제 논의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는데도 그동안 이 문제를 다뤄왔던 노사정위원회가 예정됐던 회의조차 열지 않기로 한 것 또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은행 노사간 합의가 있기까지의 과정을 내 나름대로 추측할 수는 있다.
주5일제에 대한 노사정위 합의를 기다리려면 부지하세월이니 금년 내에 도입하려면 산업별 노사 합의 형식밖에 방법이 없고,그러려면 은행 노사를 동원하는 것이 제 격이라는 정부당국의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만약 그런 수순이었다면 결코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주5일제가 오늘의 경제 여건에 비추어 타당한지 여부를 판단하고 타당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면 근로기준법 등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 법 개정을 통해 도입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주44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은 그대로 두고 토요일에 집단휴가를 내는 형식으로 휴무토록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의(恣意)적 행정이고 편법이다.
종업원 전원이 집단휴가원을 내는 것을 지금까지 불법쟁의행위로 규정해 왔다는 점을 되새기면 더욱 문제가 있다.
그 의도가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행정편의주의적 정책집행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경제행정은 문제가 있다.
KT 민영화만 해도 그렇다.
SK텔레콤이 KT 지분을 조속히 처분하지 않을 경우 이를 정부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겠다는 양승택 정보통신부장관의 발언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정한 입찰 절차에 따라 확보한 주식을 그 양이 정부예상보다 많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팔라고 강요하는 것이 설득력 있는 행정인지 의문이다.
SK텔레콤 소유 KT 주식과 KT 소유 SK텔레콤 주식을 맞바꾸라는 요구도 마찬가지다.
이런 해프닝이 빚어지게 된 까닭은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삼성 LG SK 등이 3∼5%씩 KT 주식을 취득토록 해 민영화 이후에도 경영권을 정통부가 행사할 의도였는데,그게 빗나갔기 때문이라고 봐도 큰 잘못이 아닐 것 같다.
통신시장에서의 KT 위치나 성격을 감안할 때 특정기업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공익적 측면에서 불가피하다면 민영화를 하지 않거나 최소한 동일인 취득상한을 낮게 책정했어야 옳았다.
뒤늦게 SK텔레콤에 대해 KT주식 매각을 강요하는 것은 발상 자체가 잘못이다.
민영화라는 게 국고수입을 위해 주식만 파는 것일 뿐 경영권은 넘겨주지 않는 것이라면, 또 행정적인 판단에 따라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정말 보통일이 아니다.지금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은행과 공기업 민영화란 점을 되새기면 특히 그렇다. 민영화 후에도 계속 정부에서 감도 놓고 배도 놓는 꼴이라면 그런 민영화는 아니함만 못하다.
포스코가 왜 타이거풀스 주식을 취득해 홍역을 치러야 했는지도 이 시점에서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정부 영역이 과도한데다 이런저런 행정적 '꼼수'때문에 민간자율이 허울과 구호에 그치고 있는 현실은 문제다.
< 논설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