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 부담을 안은 증시가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추세를 형성할 만한 모멘텀 찾기가 쉽지 않은 가운데 나스닥지수 약세, 반도체값 하락 등 해외 불안 요인 가세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 폭락을 거친 시장의 관심은 주요 지지선으로 인식되는 종합지수 800선에서 지지력이 형성되느냐 여부에 쏠려 있다. 종합지수가 박스권 저점을 낮추며 가격메리트 발생 구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뉴욕증시와 프로그램 매매 동향에 주목하면서 보수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하방경직성을 감안해 은행주, 낙폭과대주를 중심으로 분할 매수를 고려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 종합지수 800선 테스트 = 종합지수가 석 달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코스닥지수는 투매를 맞으며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뉴욕증시가 사흘 연속 내리며 하락 신호를 보낸 가운데 수급 악화, 심리 위축이 하강 압력을 행사했다. 수급불균형이나 악재가 우세한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종합지수는 전 저점인 804를 테스트할 공산이 크다. 다만 800선을 깨고 급격하게 하락해 나가기보다는 반등세를 모을 가능성이 높다. 종합지수 800선은 본격적인 조정국면에 진입한 지난달 중순 이래 강력한 밑변 역할을 담당해 왔다. 또 국내 경제의 상대적으로 견고한 펀더멘털은 저가 매수세가 형성되는 것을 도울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으로는 장기 상승 추세를 뒷받침하며 상승하고 있는 120일 이동평균선이 798선에 포진하고 있는 점이 긍정적이다. 이밖에 투신권을 비롯한 기관의 적극적인 지수 방어도 기대된다. 미래에셋 운용전략센터의 이종우 실장은 “과거 대세상승기에 가격조정은 고점에서 15%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마무리되는 경향을 보였다”며 “종합지수가 940선부터 흘러내려 온 터라 800선은 의미가 있으며 일시적으로 깨지더라도 지지선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외국인 매도 보기 = 외국인이 매도 공세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수급이 급격히 악화됐고 투자심리는 덩달아 얼어붙었다. 그러나 외국인 매매패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 매도는 추세적이라기보다는 뉴욕증시와 연동된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날 외국인은 지난 13일 이래 2주중 최대 규모인 1,170억원 어치를 팔아치웠다. 최근 외국인은 현물시장에서 관망세를 보이며 방향성을 드러내지 않은 터여서 이날 장 초반부터 매도를 지속하며 규모를 확대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외국인은 삼성전자 557.5억원, SK텔레콤 253.7억원, 삼성전기 188.7억원, 삼성SDI 140.2억원, LG전자 137.5억원 등을 처분했다. 반면 국민은행 192.9억원, POSCO 76.6억원, LG석유화학 59.9억원, LG화학 41.5억원, 대한항공 33.5억원 등을 순매수했다. 외국인 매매 종목을 보면 국내 증시 지분을 축소하면서도 최근의 은행주, 환율하락 수혜주 비중을 확대하는 한편 수출관련주와 기술주 비중을 축소하는 포트폴리오 조정을 지속했음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메릴린치증권 이원기 상무는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매도 규모를 확대했지만 추세적인 매매패턴을 나타냈다고는 판단되지 않는다”며 “외국인 매매가 당분간은 뉴욕증시와 연동되겠지만 국내 경기의 차별화 등으로 매수우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프로그램 영향력 지속 = 외구인의 매도가 시장에 충격을 주면서 프로그램 매매는 최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프로그램 매수가 매도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지만 지수 급락세를 멈추지 못한 것. 그러나 프로그램 매매는 여전히 증시 등락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수급변수다. 종합지수가 20포인트 가량 급락했음에도 매수차익잔고가 오히려 400억원 이상 증가해 1조원대를 가리키고 있는 점이 부담이다. 이 같은 매수차익잔고는 오는 6월 12일 지수선물·지수옵션·종목옵션 동시 만기일(트리플위칭데이)을 앞두고 평소 때보다 롤오버되는 물량이 적어 어떤 식으로든 청산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오는 6월 14일 지수산출 방식이 변경되고 LG전자 등의 지수편입에 따라 현물 바스켓과 지수선물간에 발생하는 지수추적 오차인 트래킹에러를 감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베이시스가 청산 조건을 제공할 때마다 물량을 덜어낼 것이라는 얘기다. 신한증권의 박효진 투자전략팀장은 “특별한 모멘텀이 없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프로그램 매매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이라며 “기관은 트래킹에러 등을 고려해 1조원에 달하는 매수차익잔고를 청산하고 만기 이후 재매수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경닷컴 유용석기자 ja-j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