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사람들은 손목 힘이 없어 시계를 매지 않습네다. 우리 강남 사람들은 힘이 아주 셉네다. 그래서 애들도 강아지도 모두 시계를 매고 다닙네다. (중략)1천만원짜리는 시계축에도 못낍네다. 한 3천만원은 돼야 시곈갑다∼ 하고 봐줍네다. 8천만원짜리 시계 보셨습네까?" 옌볜 말투 개그로 유명한 수다맨이라면 아마 이런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TV 프로그램에서도 그렇듯 수다맨의 얘기는 대부분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1천만원짜리는 시계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표현도 그렇다. 하지만 강남 명품관엔 분명 3천만원짜리,8천만원짜리 시계가 있다. 여기서 '강남'이라고 할 때는 지도상의 특정지역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수천만원짜리 손목시계 얘기를 꺼내는 것은 갈수록 거세지는 '명품 바람'에 대해 한번쯤 짚어보고 싶어서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명품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파리나 밀라노에서 유명 브랜드 옷이나 가방을 싹쓸이했다느니,유학생이 명품 몇 점만 가지고 들어오면 비행기 요금이 빠진다느니 하는 얘기를 우리는 수없이 들었다. 올해 들어서는 한국이 '호구'라고 알려져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수천만원짜리 시계를 매고 다니는 이유는 뭘까. 시간을 보려고? 아니다. 요즘엔 곳곳에 시계가 널려 있어 시계를 차지 않아도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그저 시간을 알기 위해서라면 수만원짜리면 그만이다. 수천만원짜리 시계를 차는 것은 과시하기 위해서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런 시계를 차겠는가. 과시욕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과시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새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던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때 얼마나 뻐기고 싶었던가. 친구들한테 "우리 엄마가 새 신발 사줬다∼"며 떠벌리지 않았던가. 명품 과시욕도 마찬가지다. 누구나?제 잘난 멋?에 사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의 '명품 바람'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명품 하나쯤 몸에 걸치지 않으면 사람 취급조차 해주지 않는 풍토가 문제다. 여고동창생 모임에서 명품을 하나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창피를 당했다는 얘기는 이젠 뉴스거리도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명품으로 치장하지 않는 아이는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명품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면서 가짜 명품 수입도 급격히 늘고 있다. 가짜 명품 적발 건수와 금액은 99년 91건 9백44억원에서 지난해 3백23건 2천4백14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선 4월말 현재 1백30건 1천2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배에 달했다. 이제 한국은 '가짜 명품 천국'이란 말까지 듣는다. 가짜라도 명품을 몸에 걸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은 사회.비록 단면이긴 하나 우리 사회,우리 소비문화의 현주소다. 이대로 가다간 계층간 갈등이 커지고 사회가 불안해질 수 있다. 명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서민들이 상류층을 향해 뭐라고 하겠는가. 명품에 집착하는 왜곡된 소비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외환위기 후 심화된 빈부격차를 줄이는 일이 시급하다. 또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최근 한국을 21개 주요국 중 네번째 뇌물국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선 명품을 치렁치렁 걸치고 다니는 상류층에 대해 서민들은 의혹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다. 윤리교육을 통해 돈이 최고란 생각을 바꾸고 '더불어 사는 지혜'도 가르쳐야 한다. 추상적이긴 하나 왜곡된 소비문화를 바로잡는 법은 이런 것밖에 없다고 본다.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