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민도 붉은 악마다."


거스 히딩크의 신화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구단으로 가는 길에 만난 네덜란드인의 첫마디였다.


8일 파리발 암스테르담행 TGV고속열차의 옆 좌석에 앉은 그는 기자가 한국사람이라고 말하자 "오는 10일 미국과의 경기도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로테르담 중앙역에서 만난 대학생 한스 피터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히딩크의 한국생활을 물은 뒤 "네덜란드인들에게 2002년 월드컵 개막전은 프랑스-세네갈전이 아니라 한국-폴란드전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4일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팀이 폴란드를 2-0으로 격파하자 월드컵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대회때 4강까지 진출했던 네덜란드가 예선통과에 실패하자 월드컵의 열기는 '실종'상태였다.


물론 월드컵경기에 큰 지면을 할애하는 언론도 없었다.


이런 현지 언론들이 한국-폴란드 경기결과는 이례적으로 크게 보도했다.


네덜란드 최대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한국-폴란드전 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히딩크가 또다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알헤민 다흐블라트지는 '한국과 히딩크 감독에게 건배'를 제의했고,폴크스크란트지는 '한국의 월드컵 첫 승리'란 제목아래 경기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피터씨는 "네덜란드인들이 히딩크와 태극전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주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안재용 과장도 "한국-폴란드전 다음날 현지 거래기관과 업체들로부터 많은 축하전화를 받았다"며 "한국의 승리가 네덜란드인들로 하여금 2002 월드컵에 관심을 갖게 했다"고 전했다.


특히 PSV구단이 있는 아인트호벤은 어느 도시보다 한국팀에 큰 관심을 보였다.


PSV 아인트호벤이 유럽 메이저 축구 구단으로 부상한 데는 히딩크의 공헌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인트호벤 시민이라면 네덜란드 토박이인 히딩크 감독이 플레이메이커 호마리우를 내세워 네덜란드 FA컵과 챔피언리그를 동시에 제패한 88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한국의 월드컵 첫승을 보며 당시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페드로 살라자르 휴위트 PSV공보관은 "4일 저녁(현지시간) 시내 일부 술집에서는 한국과 폴란드전 녹화 테이프를 다시 트는 등 갑자기 월드컵 분위기가 고조됐다"고 말했다.


그는 "히딩크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의 승리는 본선 진출에 실패한 네덜란드인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줬다"면서 "아인트호벤 시민들은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가 프랑스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 이상의 성과를 올릴 것을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시민은 "비록 현지응원은 못가지만 마음은 한국의 붉은 악마와 함께 한다"며 태극전사의 필승을 기원해 주었다.


아인트호벤(네덜란드)=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