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한-미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은 폴란드와의 첫 경기때보다 심각하면서도 차분했다. 경기 초반 양팀이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치는 동안 히딩크 감독은 팔짱을 끼고 벤치기둥에 몸을 기댄 채 그라운드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러나 종종 마른 침을 삼키며 팔짱을 꼈다 풀었다 하는 모습에서는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전반 5분 설기현의 슈팅이 빗나가자 눈만 지그시 감았을 뿐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던 히딩크 감독은 전반 15분 박지성이 날린 슈팅이 너무 약해 골키퍼에 잡히자 입맛을 다시며 실망감을 표시했다. 한국 선수들의 동작이 기민해지자 차분하던 히딩크 감독의 몸짓도 덩달아 바빠졌다. 미국이 패스미스를 저질러 공격권을 빼앗아오자 오른손을 들어 공격 대형을 갖출 것을 지시하는 한편 침착한 플레이를 주문했다. 전반 20분 랜던 도노번이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자 수비수들에게 불만스럽다는 손짓을 날렸다. 전반 24분 매시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뒤부터 히딩크 감독은 흥분이 극도에 이른 듯 벤치 주변을 서성거리며 고함을 질러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리를 질러 공격수들의 위치 선정을 지시하던 히딩크 감독은 전반 38분께 주심이 어드밴티지룰을 적용하지 않고 한국 공격의 맥을 끊자 격렬하게 항의, 대기심의 만류를 받기도 했다. 쉴새없이 벤치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히딩크 감독은 이을용의 페널티킥 실축 때는 슬며시 고개를 숙여 외면하고 말았다. 후반 들어 벤치 의자에 앉아 다소 풀죽은 모습이던 히딩크 감독은 팔짱을 낀 채 선수들의 움직임만 살폈다. 그러나 안정환을 투입한 뒤 히딩크 감독의 몸놀림과 동작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패스 실수가 나오면 일그러진 표정으로 손가락질을 해댔고 역습 기회가 생기면 '고!고!'라며 빠른 전개를 외치기도 했다. 특히 후반 19분 미국 미드필더 레이나가 그라운드에 쓰러져 시간을 끌자 손목시계를 두드리며 심판에게 '빨리 경기를 진행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동점골을 독려하면서 분노 실망 낙담 등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던 히딩크 감독은 후반 33분 마침내 안정환이 헤딩골을 뽑아내자 특유의 강력한 손동작을 두번에 걸쳐 날리며 환호했다. 기쁨도 잠시. 히딩크는 손바닥을 앞쪽으로 내보이며 다시 선수들에게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템포 늦은 최용수의 슛이 나오자 불같이 화를 내던 히딩크 감독은 후반 45분께 김태영에게 파울을 주자 주심에게 달려들 듯 뛰쳐 나와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무승부로 돌린 아쉬움을 표현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히딩크 감독은 마치 최면에서 깨어나듯 미국팀 관계자와 악수를 하며 가슴을 졸이던 90분을 마감했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