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국내 제조업체 중에서 현대자동차 만큼 질적 성장을 이룬 기업도 드물다. 현대차는 오래전부터 국내 1위의 자동차 메이커 자리를 유지해왔지만 세계속에서의 위상은 보잘 것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기술적으로는 일본 미쓰비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독자생존을 위한 세계적인 기준인 "연산 4백만대 생산체제" 구축도 요원해 보였다. 하지만 지난 99년 법정관리중인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현대차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총 2백52만대를 생산,처음으로 글로벌 "톱 10"에 진입했다. 이탈리아의 피아트(2백49만대)와 프랑스의 르노그룹(2백31만대)를 제치고 세계랭킹 9위로 올라선 것이다. 양사는 또 올해는 사상 최초로 3백만대(현지 조립생산 포함) 판매를 목표로 삼고 있어 순위를 1~2단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내수 74만3천대,수출 93만7천대 등 1백68만대를 판매해 23조5천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며 기아는 내수 44만대,수출 52만2천대 등 96만2천대를 팔아 13조4천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기아차는 이와 함께 미국과 중국내 자동차 생산공장 건설에도 착공,2005년께 연산 4백만대 이상의 양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어서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규목의 경제 달성에 바짝 다가섰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현대차의 약진은 눈부시다. 지난 2000년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글로벌 동맹체제에 편승했고 최근에는 배기량 1천8백~2천4백cc급 중형 승용차 엔진기술을 다임러와 미쓰비시에 제공키로 했다. 로열티 수입은 연간 6백55만달러로 많지 않지만 "빅3(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에 엔진기술을 수출한다는 사실만으로 현대차의 위상은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불과 몇년사이에 현대.기아차가 고성장을 이룬 것은 값싸고 품질좋은 신차들을 잇따라 개발하면서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의 점유율을 비약적으로 올린 덕분이다. 현대차는 작년에 싼타페 그랜저XG 등을 앞세워 미국시장 점유율 3.5%를 달성,과거 "마의 벽"으로 여겨져왔던 3% 선을 단숨에 돌파했다. 올들어서도 지난 5월까지 현대차 미국법인은 총 15만3천여대를 팔아 작년 동기대비 16%의 증가세를 이어갔고 기아차 역시 22.7% 늘어난 9만8천7백대를 팔았다. 현대차를 바라보는 현지 시각 역시 긍정적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DRI-WEFA는 지난 1997년부터 오는 2007년까지 10년간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에 대한 성장 가능성을 분석한 결과 현대차를 2백81%로 가장 높게 평가했다. 또 미국의 자동차전문 시장조사기관인 J.D.파워사가 미국 소비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2002년도 신모델 품질평가"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해 조사당시보다 각각 19% 및 21% 향상돼 품질개선이 가장 두드러진 업체로 선정됐다. 조사대상 업체들의 평균 품질향상률은 10% 수준이었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 지난 5년간 품질향상률이 42%에 달해 이스즈(39%) 미쓰비시(38%) 다임러크라이슬러(27%)를 제쳤으며 업계 평균인 24%도 훨씬 상회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아차도 J.D.파워사가 신차 구입을 희망하는 소비자 4천3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동차업체 웹사이트 유용성 평가"에서 최상위권에 진입하는 기록을 달성했다. 기아차 현지법인의 피터 버터필드 수석부사장은 "그동안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메이저 업체들보다 나은 평가를 받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올해부터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유럽시장 판매를 대폭 늘려 미국시장과 균형을 이룬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현대차는 서유럽 지역에서 지난해 출시한 라비타(수출명 매트릭스)의 판매가 본 궤도에 오르고 있는 데다 오는 7월 클릭(수출명 겟츠)을 출시,지난해(7만4천대)보다 20% 이상 늘어난 9만여대의 판매를 예상하고 있다. 특히 겟츠는 올 수출 목표치 6만6천대 중 4만2천여대를 이 지역에서 판매키로 했다. 기아차도 오는 7월 쏘렌토와 카렌스 디젤 등 신모델을 투입하는 한편 마케팅 활동을 강화,11만6천8백대(지난해 9만7천9백대)를 유럽지역에서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