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美 관심은 축구보다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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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6강 진출을 놓고 한국과 미국이 격돌한 10일 아침(현지시간) 미국 방송들의 첫 뉴스는 축구 얘기가 아니었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솔트레이크시티의 한 가정에서 지난주 잠자다 유괴된 14살짜리 엘리자베스 스마트양의 부모가 "딸이 살아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부디 용기를 잃지 말라"고 울먹이며 당부하는 인터뷰였다.
오전 9시30분 개장한 증시는 미 축구팀의 선전 탓인지 힘찬 상승세로 출발했다.
최근의 약세를 단번에 만회할 것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 장관이 갑자기 TV에 나오는 순간 오름세는 꺾였다.
애시크로프트 장관은 이른바 '더러운 폭탄(dirty bomb)'으로 워싱턴DC 공격을 모의하던 알카에다 소속 테러용의자를 검거했다고 발표했고 증시는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더러운 폭탄'은 핵이나 방사능물질을 담은 재래식 폭탄으로 핵폭탄에 버금가는 타격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러뉴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 정부관계자들은 독립기념일인 7월4일 또다른 테러공격일이 될지 모른다며 해상테러의 가능성 등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날 오전 미주리주의 한 가톨릭수도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수도사 2명을 포함한 3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아예 주요뉴스로 부각되지도 못했다.
미국에서 뿐만 아니다.
미국이 직접 개입하고 있는 중동과 서남아시아에서도 '무력충돌'뉴스뿐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곳에 재진입했고,인도와 파키스탄의 화해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수십명이 사망하는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온 세계가 월드컵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지만 미국은 테러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유괴에서 핵공포까지 각종 유형의 테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요즘 뉴스 체크하기가 겁난다"는 월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지구촌이 월드컵 열기로 들떠있지만 미국에서는 테러월드컵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한숨짓는다.
월가의 주식값이 축구보다 테러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