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사단 폴로어십] (上) '리더는 추종자들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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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비겼다.
16강 진출 목표는 한 고개를 더 넘어야 달성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러나 희망을 갖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동점을 일궈낸 저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저력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히딩크의 리더십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태극전사들의 창조적 '폴로어십(followership:추종자 정신)'이 배경에 있다.
축구에는 작전 타임이 없다.
아무리 속이 타도 감독은 그라운드 밖에서 외칠 뿐이다.
주장이 경기 중간에 감독 얘기를 듣고 오기도 어렵다.
감독의 작전은 시작 전,하프타임 때 딱 두번만 전달될 수 있다.
결국 경기장안에서의 의사 결정은 적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따라잡을 수 있는 선수 개개인이 내리는 것이다.
리더는 목표를 제시할 수 있다.
원대한 목표를 세울 수록 통이 큰 리더가 된다.
목표를 완수하면 그 공은 모두 리더의 것이다.
예선 두 차례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우리 대표팀의 성과도 모두 히딩크의 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축구 같은 스포츠에선 리더 못지 않게 리더를 뒷받침하는 추종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제 경기에서 리더가 참여하고 간섭할 수 있는 부분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 축구의 성과는 히딩크라는 리더와 태극전사라는 추종자들의 긍정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하겠다.
추종자 정신은 개인의 역할이 중시되는 축구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리더십 연구가들은 목표를 제시하는 리더에 못지 않게 실행계획을 만들고 실천하는 추종자들의 가치를 중시한다.
경영이론가 체스터 버나드는 "권위는 권력자나 명령을 내리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명령을 받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고 강조했었다.
추종자는 크게 보아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저급의 추종자는 '순종형'이다.
리더가 하라는 것만 하고 모든 일에 수동적이다.
능동적으로 일하는 사람 중에도 문제 있는 추종자들도 적지 않다.
바로 '예스맨'형이 그 예다.
이들은 '머리를 쓰지 않고' 리더가 좋아하는 것만 알아서 열심히 하는 형이다.
예스맨들이 넘치는 조직은 자칫 끝간데없이 추락할 수도 있다.
리더의 목표에 비판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사람 가운데도 조직에 해가 되는 이들이 있다.
불평불만만 일삼으며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소외자'로 분류된다.
리더를 리더로 키우고 그로 인해 조직을 발전적으로 성장시키는 추종자들은 바로 '효율적인 부하'들이다.
리더의 목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되 일단 옳다고 판단되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완수하는 사람들이다.
리더가 제시한 큰 방침은 따르되 실행방식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방법론을 택한다.
대의를 따르되 창의적으로 알아서 하는 사람들이 이들이다.
이런 비판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추종자들이 우글거려야 조직은 발전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효율적인 추종자들이 보이는 특징은 △자율 △헌신 △능력 △패기 등이다.
히딩크가 짜준 개인별 체력훈련 프로그램은 선수들이 휴가 기간에도, 소속팀에 가서도 '자율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완성될 수 있었다.
미국전에서 황선홍의 '붕대 투혼'은 자신이 쓰러지면 후배들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헌신'의 상징 아닌가.
골과 직접 연결이 되지 않았더라도 폴란드 미국의 문전을 마음대로 유린한 것은 자신감 넘치는 '능력'의 소산이요, 후반 중반까지 동점골이 터지지 않았을 때도 스스로를 믿고 달린 것은 바로 '패기'였다.
창의적으로 결단하고 자신감을 갖고 임기응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히딩크 군단 태극전사들은 효율적 추종자의 전형으로 꼽을 수 있다.
기업이나 조직에서 경영이 제대로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
'위 따로, 밑 따로'이기 때문이다.
히딩크의 비전은 태극전사들의 화답으로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히딩크는 효율적인 추종자들 덕분에 영웅이 됐다.
영웅을 만드는 사람들, 그들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고 무슨 이름으로 부를까.
< yskwo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