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보던 하늘에서 특별한 구름을 만나게 될 때, 누군가 특별한 사람이 내 마음을 두드렸을 때, 어느날 세상이 전혀 달라 보일 때가 있다.' 시적인 문구로 시작되는 장편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감독 이성강)가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첫 자막이 암시하듯 '마리 이야기'는 바닷가 소년 남우가 어느 날 등대에서 환상의 소녀 마리를 만났던 아름다운 기억을 담은 작품이다. 어른이 된 남우의 회상 형식을 취한 영화는 사춘기 소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어느 틈에 작은 점처럼 가물가물해진 유년시절 추억을 통해 어른에겐 순수했던 옛 모습을 상기시키고, 아이들에겐 누구나 한번쯤 꿈꿀 법한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준다. 한 소년의 성장과정이라는,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수채화같은 영상으로 표출한 데다 창작품인 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실제 '마리 이야기'의 캐릭터는 미국이나 일본 캐릭터처럼 지나치게 과장돼 있지 않다. 첫 장편으로 큰 상을 거머쥔 이 감독은 심리학을 전공한 뒤 민중미술 운동에 뛰어들었다 애니메이션쪽으로 돌아서 그동안 '우산''덤불속의 재'등 주로 인간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작품을 만들어온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장편애니메이션은 비디오 음반 책 캐릭터 등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대표적인 '원소스 멀티유스' 분야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간 해외진출은커녕 국내시장마저 미국과 일본에 송두리째 내주다시피 해왔다. 그림 실력은 세계 최고라는 평을 들으면서도 기획력과 시나리오, 자본 부족 등으로 하청국에 머물렀던 것이다. '취화선'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다시 날아든 '마리 이야기'의 수상 소식은 우리 문화 콘텐츠의 세계 진출 가능성을 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 반갑고 기쁘다. 모쪼록 이번 수상이 우리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럼으로써 미국의 디즈니나 일본의 지브리스튜디오같은 기반 형성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