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패닉룸 입니다.강도가 침입했을때 피신토록 강철문이 장착된 현대판 성(城)이지요.아무도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데이비드 핀처감독의 신작스릴러 "패닉룸"에서 부동산 중개업자가 새입주자 메그 앨트먼(조디 포스터)에게 건네는 대사다. 이혼녀 메그와 딸은 결국 이사온 첫날밤 저택의 패닉룸에서 침입자들과 생존게임을 벌인다. 급증하는 범죄와 가정파괴로 신음중인 미국인들의 불안감을 반영한 이 작품은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난 선악의 대결이 "쥐와 고양이게임"식으로 표현됐다. 좁은 공간내에서 인물들의 움직임과 극단적인 심리묘사가 정교한 카메라웍으로 그려졌다. 핀처감독은 캐릭터와 장소,상황설정의 강렬한 대비로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강력한 힘을 지닌 남자악당 3명이 가장 연약한 인간군상인 모녀만 사는 집에 침입한다. 그곳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19세기식 저택이다. 뉴욕은 첨단 통신망들로 연결된 메트로폴리스지만 모녀의 저택과 패닉룸은 소통불능의 공간이다. 위기에 빠진 모녀의 구조신호는 경찰에 닿지 못한다. 악당들은 총과 드릴 등 각종 장비를 갖췄지만 모녀의 무기는 패닉룸과 감시카메라뿐이다. 카메라로 침입자들을 감시할 수 있는 어둠의 공간을 차지해야 안전이 담보된다. 반면 밝은 빛의 공간에선 위협의 표적이 된다. 빛과 어둠이 선명히 구분되는 것이다. 패닉룸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원래 "공포의 방"을 뜻하지만 모녀에게는 가장 안전한 방이다. 하지만 그곳에 갖히는 순간 극한의 공포를 경험한다. 모녀의 심장박동이 가장 빨라진 순간을 가장 느린 슬로모션으로 처리된다. 메그가 휴대폰을 찾기 위해 패닉룸에서 나와 자기방으로 갔을때 전구는 땅에 떨어지고 손길은 휴대폰에 쉽게 미치지 못한다. 메그와 딸의 행동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폐쇄공포증과 광장공포증이 결국 한 몸임이 증명된다. 모녀는 패닉룸에서 고립감으로 인한 폐쇄공포에 빠지지만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 타인의 위협이란 다른 이름의 공포에 노출된다. 두 모녀의 이런 공포체험을 통해 영화는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할 존재가 자신뿐임을 강조한다. 현장을 방문한 전남편과 경찰도 모녀의 위기탈출에 무기력하다. 완벽한 안전지대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모녀는 패닉룸에서 나와 두려움의 대상인 강도들과 대면한 뒤에야 문제를 해결한다. 이 영화는 사회학적으로 가정붕괴에 대한 경고메시지를 담고 있다. 범인들은 모녀만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뒤 범행을 개시한다. 파탄난 가정은 외부의 침입에 더욱 쉽게 노출되는 것이다. 재혼한 남편은 이 집에 들어갔다가 범인들에게 묵사발되도록 매맞는다. 가정파괴의 주범에 대한 일종의 응징을 표현한 셈이다. 메그역의 조디 포스터는 강한 여성상을 구현했다. 그녀는 죽음의 위기에서 용기와 지략으로 자신과 딸을 지켜낸다. 전남편은 막판에 범인과의 타협을 제시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범인들과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인다. 신병을 앓고 있는 그녀의 딸도 위기상황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21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