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이 소비열풍으로 또 다른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있으나,실제 위험은 적다. 소비열풍은 한국이 더욱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가고 있다는 신호일 뿐이다. 오히려 적지 않은 이득을 안겨주고 있다. 수년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소비를 위해 돈을 빌린다는 것이 도덕적인 죄악으로 비쳐졌고 고가의 외제품 구매자들은 세정당국의 조사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유통되는 신용카드는 5천8백만장에 이른다. 현금대출을 받기 위해 지고 있는 신용카드 빚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의 12%인 52조원이다. 99년에는 개인소비의 16%만이 신용카드로 결제됐지만 이제는 56%로 높아졌다. 그 결과 개인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년여만에 6% 포인트 증가한 62%로 늘어났다. 일부 언론은 한국이 이같은 신용거품(Credit Bubble)탓에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은 잘못된 것이다. 우선 역사를 살펴보자.한국은 일본과 대만처럼 전후(戰後) 재건모델을 만들어왔다. 이들 국가는 전쟁의 상처와 위협속에서 발전해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는 제한됐고 경제는 1백% 지시형(top-down)모델을 따랐다. 시장이 아닌 정부가 경제개발의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소비자들은 일하고 저축하도록 독려됐다. 이같은 시스템은 한국이 정치적 민주화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종말을 맞이했다. 민주화는 개인의 권리를 확대시켰고 이는 소비사회의 도래로 이어졌다. 한국 역시 다른 아시아국가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이 과거의 경제 재건모델을 대체했다. 소비자는 최대 채권자인 동시에 최대 채무자가 됐다. 이런 변화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선진국 소비자의 발전과정과 흡사하다. 이 과정에서 생산성은 향상되고 가계부채는 늘어난다. 선진국의 경우 가계부채는 개인가처분소득(PDI)의 1백∼1백20%에 이른다. 한국은 지난해 96%로 높아지면서 비슷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1990년만 해도 한국의 가계부채는 PDI의 75%에 불과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아시아 국가들의 치명적인 약점,즉 자본의 잘못된 분배를 예방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 은행들은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신용위기가 덜한 개인에 대출을 늘리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떼일 염려도 적은데다 수익성도 좋은 개인대출을 선호한다. 이같은 움직임은 기업지배구조와 경제적인 효율성 측면에서 세가지 기적을 만들어냈다. 우선 저축률은 낮지만 생산성이 높은 미국과 같은 나라들처럼 자본이 더욱 생산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둘째 기업들이 자본시장에 더욱 의존하게 되면서 주주들의 입김이 커졌다. 마지막으로 기업들은 시장이 원하는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거엔 정부가 사실상 기업의 생산아이템을 결정했다. 한국 정부는 신용거품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시장참여자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데 힘써야 한다. 은행들이 신용카드 거래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게 하고 소비자 파산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관련조항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 은행들이 예상하는 개인부도율을 현재의 2∼3%에서 8∼10%로 끌어 올려야 한다. 정리=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 ◇이 글은 영국의 시장전략연구기관인 인디펜던트스트래티지 창업자 데이비드 로체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The Benefits of Korea's Credit Bubble'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