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월드컵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한국과 이탈리아간의 경기가 열린 18일.기장 경력 5년차인 노명환씨(47)는 이날 오후 4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 OZ202편에 탑승했다. 평소 월드컵경기 하이라이트까지 두세번 챙겨볼 정도로 축구에 관심이 많은 그였지만 이날만은 관제라디오를 통해 간간이 전해오는 소식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노 기장은 "한국팀을 화면으로 보지 못하는게 무척 아쉽지만 기장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는게 간접적으로 월드컵을 지원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몸은 비록 태평양 상공에 있겠지만 마음만은 한국팀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패밀리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즈 종로점에서 키친매니저로 일하는 최승욱씨(33)도 주방에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만드느라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보지 못했다. 최씨는 "종로점은 문 밖에만 나가면 수만명의 응원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곳"이라며 "어쩔 수 없이 TV도 없는 주방에서 한국팀의 승리를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월드컵대표팀의 16강전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 가운데 항공기 조종사나 요리사를 비롯해 의사,보안경비업체 직원 등은 경기를 관전하지 못하고 애만 태워야 했다. 무엇보다도 경기가 열린 대전지역의 응급실 근무자들은 그 어느때보다 긴장된 하루를 보냈다. 유인술 충남대학병원 응급실장(응급의학 전문의)은 "경기 결과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큰 사고가 없기를 기원했다"며 "밀려드는 환자로 정신이 없었지만 다행히 대부분 상처가 경미했다"고 안도했다. 보안경비업체 직원들도 월드컵 경기와는 담을 쌓았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언제 어디서 도난사건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경비업체인 시큐리티코리아의 박철희 관제팀장은 "월드컵 경기중에 출동상황이 발생할수 있어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시험을 불과 며칠 앞둔 사법시험 준비생들의 마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사법시험 2차를 준비중인 변희구씨(33)는 "대표팀의 경기를 볼까도 생각했지만 공부리듬이 흐트러질 것 같아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시험에 충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