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국민은 18일 36년전의 악몽이 재연된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할말을 잊었다. 연장 후반에서 이탈리아 프로팀 페루자에서 뛰는 안정환의 헤딩슛이 그물을 가르는 순간 `로마의 심장' 피아자 데 포풀로 `국민광장'에 모여있던 수천명의 열성축구팬들은 그자리에 주저앉은 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탈리아 축구팬들은 한국전에 앞서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79%대 21%의 압도적인 승률로 8강진출을 따놓은 당상으로 간주하고 스페인과의 일전에 오히려 관심을기울였다고 교민들은 전했다. 국영 라이 방송의 해설자는 골게터 비에리의 선취득점으로 이탈리아가 1대 0으로 전반을 마치자 "한구 선수들이 포르투갈전 때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오늘경기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승리를 예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고 경기가 연장전에 돌입하면서 라이 방송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투혼과 속도를 경계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히딩크 감독이 막판 승부카드로 던진 차두리가 투입되면서 경기 분위기가 한국쪽으로 기울자 차두리가 과거 독일 프로리그에서 명성을 날린 차범근선수의 아들이라는 부연설명과 함께 차두리의 할력에 찬 움직임을 뒤좇았다. 일부 축구담당 기자들은 66년 런던 월드컵 당시 `잊을 수 없는' 패배의 아픔을 안겼던 북한 박두익의 자리를 대신해 페루자에서 냉대를 받았던 안정환이 36년만의악몽을 다시 안겨줄 장본인이 될 줄은 몰랐다며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일부 열성팬들은 현지 언론들이 연일 심판의 부당한 판정에 이탈리아가 부당한 피해를 받고 있다며 과민한 피해의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탓인지 토티를 퇴장시킨 것은 명백한 오심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교민들의 응원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로마 시내 한국음식점 `소나무가든'에서 경기장면을 지켜본 라이 방송의 파울로 베르나르디 기자는 "일부 판정에 문제가있었다고 생각하며 이탈리아 팀에게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베르나르디 기자는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뜨거운 가슴으로 투혼의 스피드를 발휘했으며 강력한 우승 후보인 이탈리아를 물리친 만큼 이번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진출해서 우리를 대신해 우승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 있던 50대의 한 시민은 경기소감을 묻는 질문에 한마디로 "한국이 승리를 샀다"고 강한 불만을 여과없이 표출했다. (로마=연합뉴스) 오재석특파원 ojs@yna.co.kr (YONHAP) 020619 0006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