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6:08
수정2006.04.02 16:12
정무직인 장.차관을 빼고 직업 공무원이 갈 수 있는 꼭대기는 1급(관리관)이다.
그렇다면 '1급중의 1급' 보직은 어느 자리일까.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을 꼽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공무원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까지 감독하는 실무 최고 책임자가 바로 예산실장이기 때문이다.
1급 자리로는 이례적으로 장관이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거쳐 임명한다.
그만큼 막중한 책무와 권한이 실려 있는 자리라는 얘기다.
예산실장을 거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예산실의 '힘'이 그대로 묻어난다.
기획예산처내 예산회의실에 걸려 있는 역대 실장의 사진에는 문희갑 전 대구광역시장을 비롯해 이진설 전 건설부 장관, 강현욱 전 농림수산부 장관,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 안병우 전 국무조정실장 등의 모습이 보인다.
현재는 임상규 실장이 이 자리를 맡고 있다.
초대 김용한 실장 이후 20년만의 전남 출신 인사다.
예산실장 자리가 '정권'과 무관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기획예산처의 첫째 파워는 예산실에서 나온다.
1백12조원(올해)의 정부 예산에 대한 씀씀이가 이곳에서 결정된다.
국가정보원이나 국방부, 재정경제부 등 제 아무리 날고 기는 부처라도 예산처의 협조없이는 원하는 정책을 집행해 나갈 수 없다.
본격적인 예산편성철인 6∼7월이 되면 기획예산처 주차장이 타부처 공무원들의 차량으로 발디딜 틈 없이 붐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2백조원에 이르는 각종 기금의 관리.감독권까지 기획예산처 업무가 됐다.
임 예산실장 아래 주무국장으로 개방직인 예산총괄심의관은 예산통인 정해방 국장이 맡고 있다.
총괄심의관이 예산의 전체 구도를 짜는 한편 유덕상.신철식 국장이 각각 맡고 있는 경제예산심의관과 사회예산심의관직은 행정부를 경제부처와 기타부처로 나누어 예산 배정 등의 업무를 한다.
박인철 국장이 이끄는 재정기획국은 중기재정계획을 수립하고 이영근 국장 소관의 예산관리국은 예산 집행을 감독한다.
기획예산처의 뿌리는 과거 경제기획원.
장승우 장관과 박봉흠 차관을 비롯해 과장급 이상은 대부분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었다.
현 정부 들어서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을 통합, 발족시킨 기획예산처에는 두 개의 '실' 조직이 있다.
예산실 외의 다른 하나는 정부개혁실.
현 정부의 핵심 개혁과제인 공기업 민영화를 비롯해 크고 작은 공공부문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하는 곳이다.
정부 초기에는 행정조직 개편업무를 주도하기도 했다.
정부개혁실장 자리는 초대 이계식 실장이 2000년 8월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 되돌아간 뒤 김경섭 실장이 지금까지 맡고 있다.
정부개혁실에는 박종구 공공관리단장, 박용주 공공2팀장, 김현석 행정2팀장 등 외부출신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미국 시라큐스대 경제학 박사로 아주대 교수를 지낸 박 단장은 현 정부 초기인 1998년 3월 기획예산처에 합류, 세 명의 장관과 두루 호흡을 잘 맞추며 정권 차원의 핵심 과제인 공공개혁 작업을 무리없이 추진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공관리단은 한국중공업의 성공적인 민영화를 필두로 한국전력 분할 민영화 등을 무리없이 이뤄냈고, 최근에는 KT 민영화도 마무리지었다.
서동원 재정개혁단장은 정부의 재정제도 개혁을 총괄하고 있고, 김동환 행정개혁단장은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산하단체 개혁방안을 모색중이다.
요즘은 신설된 기금정책국이 '뜨는' 양상이다.
예산업무는 어느 정도 틀에 짜여져 있는 반면 경영이 방만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각종 기금에 대한 관리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
'정부가 민간부문의 기금까지 간섭한다'는 차가운 시선은 기금관리국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기획예산처 조직은 인사측면에서 장.단점이 극명한 조직이기도 하다.
외부로부터의 인사압력이 적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대부분 연공서열이 정해져 있어 발탁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예산처가 엄격한 연공서열로 움직이는 데는 나름의 사정도 있다.
웬만한 다른 부처와 달리 산하기관을 두지 않고 있어 '인사 배출처'가 없고, 그런 탓에 인사적체가 그만큼 심하기 때문이다.
예산과 개혁 두가지 업무에만 집중돼 있다 보니 공무원 '옷'을 벗고 전직할 만한 민간 수요처도 많지 않다.
이에 따라 정부 일각에서는 예산처가 타부처의 장.차관을 많이 내보내는 것이 인사적체 해소를 위한 것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