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붉은' 응원단들을 볼 때마다 모두 내가 만든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안정환 선수 팬이라는 봉제공 김은희씨(24)는 "새벽까지 티를 만드느라 거리 응원에도 못 나가 봤지만 붉은 티를 입은 응원단이 우리 팀 승리에 큰 몫을 한다고 해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직원 10명도 안 되는 영세 의류생산 업체 2백∼3백개가 몰려 있는 서울 성동구 홍익동. 그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편인 유림사. 이 회사 천정빈 사장(32)과 5명의 직원은 이달 들어 휴일도 없이 철야 작업을 하느라 녹초가 돼 버렸다. 소형 재봉틀 4∼5대를 갖춘 5평 남짓한 지하 작업장에는 대형 선풍기 1대가 연신 돌고 있지만 폭주하는 'Be The Reds' 티셔츠 생산 주문을 맞춰야 하는 이들의 얼굴은 땀방울 마를 새가 없다. 천 사장은 "빨간 색이 지겨울 정도지만 월드컵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느낀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유림사 사람들이 눈코뜰 새 없이 바빠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폴란드를 꺾고 48년 만에 월드컵 첫 승을 올린 이후부터. 그 전에는 기껏해야 하루 수십장 정도 들어오던 붉은 티 주문이 폴란드전 다음날부터 2천∼3천장씩 쇄도했다. 한국팀이 포르투갈도 꺾고 16강에 진출하자 주문량은 5천장으로 폭증했다. 동대문시장 등의 도매상들이 티셔츠 한장당 제작비를 1백원 가량 올려준 것도 이즈음이다. 이 물량은 유림사가 소화할 수 있는 한계. 붉은 티에 'Be The Reds' 흰 글씨를 새겨주는 공장들 역시 '오버' 상태여서 더 만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천 사장은 내심 이탈리아전이 열린 18일까지만 고생을 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예상은 빗나갔고 유림사는 스페인전이 열린 22일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했다. 4∼5일 전부터는 붉은 색 원단을 확보하지 못해 납품량의 절반쯤은 흰색 원단으로 만든 후 나중에 붉은 염색을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시장 도매상인들이 경기 결과를 잘 예측하는 것 같다"고 밝힌 천 사장은 "동대문 시장 사람들은 우리 팀이 결승까지 올라간다고 보고 주문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색조 유행이 이미 붉은 계통으로 굳어진 상태인데다 월드컵이 끝나도 붉은 티 인기가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도매상인들이 대량으로 주문하고 있어 유림사는 올 여름 내내 바쁠 것 같다. 서욱진.이상열 기자 venture@hankyung.com